물건 살 돈 없고, 돈 있어도 물건 없는 억압이

어제의 우유값 3000천원이 오늘 5100이 되고 있는 이란

by 고래 아저씨

아침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 한 팩을 꺼내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는 이 사소한 행동이 내일 당장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상상을 굳이 하지 않으며 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 우유 한 팩을 집어 드는 일은 목숨을 건 투쟁이자 절망의 확인서가 되고 있다. 2026년 1월, 이란의 이야기다.

물론 우리도 가끔 마트에서 "아니, 대파 한 단이 왜 이래?"라며 놀라곤 한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어제 산 가격의 두 배가 되어 있다면 어떨까.


70%라는 괴물 같은 숫자

통계학자들은 '물가상승률 70%'라는 건조하고 딱딱한 숫자로 이 현상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란의 서민들에게 이 숫자는 매일 아침 바뀌어 있는 가격표라는 실체적 공포로 다가온다. 어제 3,000원이었던 우유가 오늘 눈을 뜨니 5,100원이 되어버리는 기막힌 세상이다. 1년 전보다 1.7배 비싸진 물가는 중산층을 빈곤층으로, 빈곤층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가차 없이 밀어버렸다. 물론 일일 물가 상승이 70%는 아닐테지만 치솟는 물가는 돈을 종이 조각이 됐고 공장은 멈추고 시민은 굶주리는 상황에 정부는 작동을 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쯤 되면 월급날이 기쁘기는커녕, 통장에 스치듯 지나가는 돈을 보며 헛웃음만 나올 것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가게 주인이 가격표를 바꿔 붙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니 말이다. 화폐는 종잇조각이 되었고, 성실하게 모은 저축은 오히려 손해 보는 바보 같은 짓이 되었다. 그것이 지금 이란의 얼굴이다.

우리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겪었던 환율 급등의 공포를 어렴풋이 기억하는가. 그때 우리는 금 모으기를 하며 나라를 살리겠다고 쌈짓돈을 꺼냈었다. 하지만 지금 이란은 그보다 수십 배는 더 가혹하고 잔인한 '초인플레이션'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금을 모으는 게 아니라, 금니라도 빼서 빵을 사야 할 판이다.


불꽃 같은 1020, 엔진 같은 3040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가장 먼저 거리에 나선 주역은 뜻밖에도 10대와 20대다. 미래가 거세된 청년들은 잃을 것이 없다는 듯 총구 앞에 맨몸으로 선다. 기성세대들이 "요즘 애들은 약해빠졌다"라고 혀를 차던 그 편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혹자는 묻는다, "가정을 책임지는 3040 세대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가?"라고.

사실 그들은 숨은 것이 아니라 가장 치열하게,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조용히 상점의 셔터를 내리고, 공장의 기계를 멈춰 세운다. 1020 세대가 거리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이라면, 3040 세대는 그 불꽃이 꺼지지 않게 정권의 연료를 끊어버리는 묵직한 '엔진'이다. 아이들이 거리에서 피를 흘릴 때, 부모들은 그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상처를 닦아주고 파업을 통해 독재 정권의 돈줄을 죄고 있다.

이란의 3040 역시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부모의 이름'으로 승화시켜 저항의 한 축을 묵묵히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부모는 강하다는 말은 만국 공통어인가 보다.


우리 역사 속에도 그리고 어쩌면...

이란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묘하게 우리 근현대사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부정부패에 온몸으로 항거했던 4·19 혁명의 피 끓는 젊음이 있어고, 전 국민이 하나 되어 민주주의를 목 놓아 외쳤던 6월 항쟁의 뜨거운 열기도, 독재에 맞선 5·18 민주화 운동도 우리는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화라는 꽃을 피워냈기에, 이란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다만 뼈아픈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 위기를 '연대'의 힘으로 극복해 냈다는 점이다. 반면 이란은 내부의 고질적인 부패와 외부의 강력한 경제 제재라는 이중, 삼중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채 괴물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벽을 두드리고 있다.


그 속에도 가족이 있다.

우리는 뉴스를 보며 정치 공학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그 정치적 질문들 속에 그곳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을까를 걱정한다. 정권의 붕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너져내린 가정의 풍경이다.

돈이 있는 이는 비싼 비자를 사서 비행기로 떠나고, 돈이 없는 이는 목숨을 걸고 산을 넘어 국경을 넘는 '엑소더스'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들이 버리고 떠나는 것은 조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아니다.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희망이 증발해 버린 '시간' 그 자체를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뽑아 낯선 땅에 옮겨 심어야 하는 그 심정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는 오늘 하루를 통째로 바쳐 그 평범함을 산다.

우리 아이들이 걱정 없이 뛰어노는 이 땅의 평화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누군가는 그 당연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오늘 하루를 통째로 바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편의점에서 우유 한 팩을 집어 들 때 잠시 멈칫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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