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물살을 가르며
내가 매일 아침 몸을 담그는 곳은 성남,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당의 한복판이다. 지금은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과 세련된 카페들이 즐비하지만, 아주 오래전 이곳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축축한 습지와 끝없이 펼쳐진 벌판,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는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높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은 황새가 둥지를 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보금자리였다. 예전에 덕선이가 나온 드라마에서 덕선이 아버지가 성남으로 이사를 계획하던 장면도 떠오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황새가 우리가 흔히 아는 두루미나 학과는 조금 다른 습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고고하게 땅을 걷는 두루미와 달리, 황새는 굳이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둥지를 튼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찬 바람이나 중국 동북부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이 철새들에게, 성남의 탄천은 지친 날개를 접고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정거장이었을 것이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이 물길은 그들에게 생명줄이자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분당에는 여전히 '황새울'이라는 이름을 특정 이름으로 남아 쓰이고 있다. 빽빽한 아파트 숲과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마주하는 황새울이라는 단어는 묘한 이질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탄천 변에 서서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아주 오래전 이곳을 하얗게 뒤덮었을 황새 떼의 날갯짓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지금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이름 덕분에 우리는 잠시나마 잃어버린 자연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나는 그 새들의 이름을 딴 '황새울 국민체육센터'에서 매일 아침 수영을 한다.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팔을 젓는 행위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지금처럼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며 꾸준히 이어온 것은 대략 5년 남짓 된 것 같다. 이전에는 안양이나 광교의 수영장을 철새의 이동처럼 운동을 했었다. 그러다 정착했던 광교 수영장이 내부 공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 근처 수영장을 탐색해야 했다.
처음에는 공사 기간인 딱 한 달만 버티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등록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샤워실과 낯선 레인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재미있는 법이라더니, 그 한 달이 계기가 되어 나는 다시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때로는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수영은 보통 출근 전인 아침 6시부터 50분가량 진행되는데, 나는 집과 수영장이 멀다는 핑계로 이 구역의 소문난 지각쟁일 것이다. 아침일찍 일어나 눈곱만 떼고 달려가지만, 언제나 다들 몸을 풀고 열심히 운동할 즈음 에야 헐레벌떡 수영장에 도착하곤 한다. 남들보다 늦게 물에 들어가는 만큼,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더 격렬하게 팔을 휘저으려 애쓴다. 늦잠을 잔 날의 수영은 운동이라기보다 차라리 참회에 가깝다.
이곳의 레인 길이는 25m로, 이전에 다니던 광교의 50m 레인보다는 확실히 짧다. 처음에는 벽을 차고 몇 번 팔을 저으면 금세 턴을 해야 해서 감질이 났지만, 익숙해지니 오히려 아침 운동으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나타나는 벽은 휴식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준다. 짧은 호흡으로 끊어가는 리듬이 때로는 더 경쾌할 수 있다는 것을 물속에서 배운다.
혼자서 하는 자유 수영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사람들과 함께하는 강습반을 선호하는 편이다. 월, 화, 목, 금요일마다 강제로라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혼자였다면 이불 속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수십 번도 더 포기했을 아침들이, 강습이라는 약속 덕분에 활기차게 시작된다. 출장을 가거나 전날 과음으로 인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출근하는 날엔 웬만하면 수영장으로 향한다.
내가 낯선 이곳에 안착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강사님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다. 수영 강사라는 직업은 사실 녹음기처럼 동일한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고단한 일이다. "팔 펴세요", "힘 빼세요", "고개 드세요" 같은 말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외치다 보면 직업 정신이 투철하지 않고서야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황새울 강사님은 마치 오늘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을 대하듯 한 사람 한 사람을 꼼꼼하게 지도한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의 몸짓을 교정해주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그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지겨울 법도 한 그 반복 속에서 지친 기색 없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물속에 있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나를 더 움직이게 만든다.
두 번째 이유는 놀라울 정도의 깨끗함이다. 수영장의 탈의실과 샤워장은 사실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지저분해지기 가장 쉬운 공간이다.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젖은 몸으로 들어와 씻고 옷을 갈아입는 곳이니, 바닥에 물기와 머리카락이 엉겨 붙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청결을 유지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보통 공용 시설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은 올 때마다 바닥이 깔끔하게 유진된다. 샤워 후 머리를 말리는 공간조차 머리카락 뭉침 없이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볼 때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쓸고 닦고 있다는 증거다. 이토록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라면 내 아침을 맡겨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이곳에 정착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다녔던 안양이나 광교도 그렇고, 우리 주변에는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꽤 많다. 시나 구에서 운영하는 시설들은 사설 수영장에 비해 턱없이 저렴한 이용료를 자랑한다. 하루 평균 3,000원이나 4,000원 정도면 따뜻한 물에서 샤워도 하고 마음껏 수영도 즐길 수 있으니,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누리는 호사다.
물론 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운과 엄청난 순발력이 필요하다. 기존 회원이 그만두지 않는 이상 신규 회원이 들어갈 자리는 바늘구멍처럼 좁기 때문이다. 첫 수강 신청엔 컴퓨터 앞에 앉아 초시계를 보며 긴장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1초 컷'의 승부가 벌어지는 순간이다. 수영 실력보다 클릭 실력이 더 중요해지는 아이러니한 시간이다.
나는 이번 황새울 국민체육센터 등록에서 정말 운이 좋았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쟁취한 이 자리는 나의 부지런함이 아니라 행운이 만들어준 기회다. 여하튼 이런 훌륭한 수영 시설을 운영해주는 시와 나라에 가끔은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질 때다.
함께 수영하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거의 비슷한 시간에 마주친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성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안경 자국이 선명한 얼굴만큼은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사회적 지위나 이름이 아닌, '수영하는 태도'로 서로를 기억하고 정의한다.
저분은 어제 결석했구나, 저분은 자유형 하나만큼은 선수처럼 빠르구나, 저분은 평영 발차기가 잘 안 돼서 고생하고 있구나. 물속에서의 움직임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뒷사람을 위해 턴을 할 때 자리를 비켜주는 배려심 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사람을 추월하려는 욕심이 물살을 통해 전해지는 사람도 있다. 수영장은 말없이 서로의 본모습을 들여다보는 거대한 어항과도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삭막한 도시처럼, 굳이 통성명하며 깊은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혼자 상상하며 걱정하기도 한다. 표정이 어두운 분을 보면 위로의 말을 건넬 수는 없어도, 내일은 저분의 스트로크가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다. 이것은 침묵 속에서 나누는 우리만의 독특한 우정이다.
오늘도 15명 남짓한 사람들이 25m 레인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며 거친 숨을 내쉰다. 우리는 서로 약속하지 않았어도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같은 공간으로 모여들 것이다. 마치 황새들이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이곳 황새울로 돌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본능에 이끌려 돌아오는 철새들처럼, 우리도 물 냄새에 이끌려 새벽마다 이곳으로 회귀한다.
생각할수록 '황새울'이라는 이름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빌딩 숲 사이에서 물을 찾아 날아드는 우리네 모습이 영락없는 도시의 황새들이다. 회사를 매일 나가는 것이 생존을 위한 책임이자 의무라면, 매일 수영을 하러 나가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이자 하루를 지탱하는 기쁨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고통?과 상쾌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수영은 아마도 내 평생의 운동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어도 물속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평생을 황새처럼, 때가 되면 물가로 나아가 날개를 펼칠 것이다. 비록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물살을 가르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새보다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