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 시대, 공무원 서적 판매가 증가하는 이유
오늘 조간 신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실린 두 개의 기사가 마치 짠 듯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지면은 현대자동차에서 최초로 40대 사장이 탄생했다는 파격적인 혁신의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반면 바로 옆 지면에는 하나은행을 비롯한 주요 금융권에서 40대부터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서늘한 소식이 자리했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해 정교하게 배치한 연극 무대 같았다.
40대라는 나이는 이제 어떤 이에게는 화려한 날개이고, 다른 이에게는 무거운 족쇄가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막연하게 글로만 읽어왔던 한국형 'K자형 양극화'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급격한 상승 곡선을 타고, 누군가는 끝 모를 하강 곡선으로 미끄러진다. 그 갈림길이 너무나 가혹해서 신문을 쥔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우리는 지금 가장 잔인하고도 역동적인 변화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현대차의 40대 사장 탄생은 '능력'이 '연공서열'을 압도해버린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 덩어리가 아니라 달리는 소프트웨어로 변모하고 있다. 변화의 맥락을 읽어내고 기술을 이해하는 40대는 '사장'이라는 파격적인 날개를 단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속도전이 기업의 인재상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오직 성과만이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하지만 같은 40대라도 기술의 파도에 밀려난 자리에 선 이들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세상은 그들에게 '명예퇴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족쇄를 채운다. 가장이 한창 일할 나이에 '명예'롭게 짐을 싸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역설이다. 은행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고 자랑하지만, 그 성과가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돈을 잘 벌었기에,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줄일 수 있는 자금이 생겼다는 잔인한 해석도 가능하다.
우리가 은행 지점을 찾지 않게 된 그 편리함이 누군가의 책상을 치워버렸다. 창구가 사라진 자리에는 매끈한 AI 키오스크가 들어서서 24시간 불평 없이 일한다. 나의 편리한 모바일 뱅킹 앱이 은행원의 밥그릇을 뺏는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기업은 성장하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바로 우리 눈앞의 현실이다.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었지만, 어떤 인간에게는 해고의 고통을 주었다.
기업은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더 큰 부를 축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의 달콤한 과실이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내 지갑의 두께와 기업의 재무제표가 완전히 딴 길을 걷는 '디커플링'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각자도생의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냉혹한 양극화의 파도 속에서 최근 공무원 시험 인기가 다시 반등한다는 뉴스는 의미심장하다. 한때 철밥통이라며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단단함이 무엇보다 간절하다. 사람들은 이제 일확천금의 대박을 꿈꾸기보다 확실한 생존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40대 사장이 될 희박한 가능성에 배팅하기보다, 40대 명퇴자가 되지 않을 확률을 사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월급날은 가장 매혹적인 복지가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장 단단한 중간 지대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혁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안정을 찾아 회귀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도전 정신이 사라진 세태라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당장 책상이 사라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안정은 이제 명품 가방보다 더 갖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장 비싼 사치품이 되어버린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K자의 윗줄을 타라고, 혁신가가 되라고 등 떠미는 듯 하다. 자기 계발서는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매일 아침 우리를 협박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모두가 40대 사장이 될 수도 없고 천재 개발자가 될 수도 없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고 싶을 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미션이 되어버린 세상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다시 노량진 공무원 학원으로 몰리는 그 수많은 발걸음이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거대한 기술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가족을 부양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지키고 싶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정직하고 처절한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버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숭고한 투쟁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생존을 증명하고 있다.
신문을 덮으며 나는 40대 사장에게도, 그리고 40대 명예퇴직자에게도 마음속으로 건투를 빌었다. 날개를 단 자는 추락을 조심해야 하고, 족쇄를 찬 자는 그것을 끊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는 모두에게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