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에 호일 감을 밤

두한족열을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

by 고래 아저씨

추운 겨울밤, 나는 오늘 발가락에 알루미늄 호일을 감아보련다. 이상한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한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다고 하니 오늘밤 실천해봐아겠다. 마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1월의 무자비한 추위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누군가는 겨울이 겨울답게 추워야 제맛이라는데 정말 1월답게 매섭고, 거리낌 없다. 특히 밤이 되면 발가락부터 시려온다. 어떤 날은 감각조차 없어져 저 발가락이 내말을 들을지 잠깐씩 꿈틀거려 보기도 한다. 양말을 두 겹, 두꺼운 양말을 신어봐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두한족열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머리는 이불 속에 파묻히고, 발은 냉동실에 있는 것 같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이 원칙을 지켰을까.


단열과 반사의 차이

우리는 보통 옷을 여러 겹 입는다. 공기층을 만들어 열을 가두는 방식이다. 이게 바로 단열이다. 패딩이 따뜻한 이유도, 털모자가 필수인 이유도 같다. 공기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런데 알루미늄 호일은 다르다. 내 몸의 열을 다시 나에게 쏴준다. 반사의 방식이다. 밖에서 열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내가 만들어낸 열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묘하게 와닿았다. 새로운 걸 얻으려 애쓰기보다, 이미 가진 걸 지키는 게 먼저라는 것. 너무 비약적인 비교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춥나.


몸이 발가락을 포기하는 이유

우리 몸은 추울 때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심장, 폐, 간 같은 핵심 장기로 피를 몰아넣는다. 발가락이나 손끝 같은 말단은? 미안하지만 포기한다. 생존에 덜 중요하니까.

그래서 동상은 늘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 온다. 통풍도 마찬가지다. 말초신경 끝인 엄지발가락에 주로 찾아온다. 몸이 이미 포기한 자리에 질병이 온다. 몸은 정직하다. 내 통풍도 그렇게 왔나보다.(요산이 많아져 신체 끝단부에 쌓여서 생기는 황제병^^)

그러니 발가락을 따뜻하게 하는 건 몸에게 말하는 거다.

"여기도 중요해. 포기하지 마."


화분 뒤의 호일 판

겨울철 화분을 키우는 사람들은 안다. 창가 화분 뒤편에 알루미늄 호일을 댄 판을 세워두는 것. 부족한 겨울 햇빛을 반사시켜 식물에게 빛을 더 준다. 식물도 결국 빛이 필요하니까.

같은 원리다. 있는 걸 더 잘 쓰는 것. 새로운 창을 내거나 조명을 사는 게 아니라, 이미 들어오는 햇빛을 두 번 쓰는 것. 효율의 미학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그렇다.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다가, 이미 가진 것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돈, 더 많은 관계. 그런데 정작 지금 있는 것들은 반쯤 낭비하고 있다.


김밥을 감싸는 이유

김밥을 호일에 싸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단순히 모양을 잡으려고가 아니었다. 따뜻한 온기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밥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반사시키는 것.

분식집 아주머니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 나는 그저 배고파서 호일을 벗기기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제는 김밥 호일을 벗길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이 얇은 은색 종이가 어떻게 따뜻함을 지켜냈는지. 그리고 내 발가락에 감았던 그 밤을.


이미 가진 열을 낭비하지 마라

우리는 늘 밖을 본다.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환경. 하지만 정작 내 안의 에너지는 새어나가고 있다. 체온처럼, 조용히, 지속적으로.

어쩌면 필요한 건 새로운 뭔가가 아니라, 새어나가는 걸 막는 얇은 막일지도 모른다. 알루미늄 호일 한 장 같은 것.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작고 얇아도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용 없는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