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현상에 대한 나만의 의미
사람이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것들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스무 살에는 그 말이 교과서 속 활자처럼 들렸지만, 나이가 쌓일수록 그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자신만의 철학을 품고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쩌면 "삶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최근, 한 사람의 삶을 지켜보다가 주말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 하나가 생겼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 곁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떠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고, 그저 곁에 있는 모습에서 어떤 말로도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느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질문을 마음 깊이 붙잡게 되었다.
저 사람에게 삶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나의 평일은 짜여진 훈련처럼 움직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집안 정리를 간단히 마친다. 어수선한 공간에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어수선해진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몸으로 배웠다. 이 작은 정리는 삶이 오늘도 시작되고 있음에 대한 나만의 감사 표현이다. 만약 이것을 그냥 지나쳐버린다면, 하루의 시작이 단순히 '어젯밤이 끝난 것'에 불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면 수영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나의 본격적인 전략이 시작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아침 수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과 수영장과 회사를 잇는 동선을 계산했을 때, 차가 없으면 세 곳을 모두 소화할 수 없다. 문제는 이 동네의 주차난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하루종일 차를 이동시켜야 해서 정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수영을 마치고 회사 근처 최적의 위치에 차를 세우는 '주차 전략'을 매일 실행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은 내 하루의 흐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다. 8시 정식 출근 전, 잠깐의 틈이 생긴다. 나는 이 시간에 글을 읽거나 짧게라도 몇 줄 쓴다. 이 30분 남짓한 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8시가 되면 그 공간은 닫히고, 5시까지는 철저하게 회사의 문제들 속으로 뛰어든다. 고민하고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고, 다시 고민하는 과정을 주구장창 반복한다.
5시 30분이 되면 미리 선점해둔 주차 위치로 향해 퇴근길에 오른다. 집에 도착하면 대략 7시다. 온몸으로 쏟아낸 하루의 무게가 소파를 당기지만,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 마냥 눕기도 쉽지 않다. 뭔가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고개를 들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 날보다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이 더 많다. 의지와 현실의 간극이 그렇게 조용히 쌓여간다.
그렇지 않은 날은 동료들과 저녁 자리가 생긴다. 나는 음주에 있어서 절제보다는 몰입을 선택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날은 어김없이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선다. 다음 날 아침, 숙취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루틴만큼은 억지로라도 지켜내려 한다. 수영장 물이 평소보다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래도 간다. 왜냐하면 한 번 무너진 루틴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무너진 채로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수영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 몸과 마음을 다듬는 나만의 의식이다. 원래 취지는 솔직히 단순했다. 샤워 전에 그래도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운동을 했다는 마음의 안식이라는 개인적인 신념이랄까. 그런데 그 신념이 어느 순간 삶의 의식으로 발전해버렸다. 귀찮고 피곤한 날에도 나는 씻기 위해서라도 수영장에 간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런데 그 의식에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 따라왔다. 오래된 허리 통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물속에서만큼은 중력에서 잠시 해방되어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물 속에서 나란히 팔을 저어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묘한 위안이 된다. 다들 각자의 무게를 지고 살면서도 매일 아침 이 자리에 나와 물을 가르는 사람들. 그 연대는 아무 말도 없이 이루어진다.
단 10분을 하더라도 나는 씻기 전에 반드시 물에 들어간다. 수영은 나의 삶에 부상 방지용 준비운동이다. 준비운동 없이 달리면 탈이 나고, 근육이 뭉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친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면 마음 어딘가가 뭉치거나 삐끗하기 쉽다. 나에게 수영은 그 하루치 준비이자, 오늘을 살아낼 최소한의 의식이다.
나와 나는 다르다. 움직이는 나와 생각하는 나는 다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학교에서 하던 예습과 복습과 다를 바 없다. 스쳐지나가는 감정들, 불현듯 떠오른 생각들, 별것 아닌 것 같은 하루의 장면들을 붙잡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해준다. 정리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삶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다. 무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마 그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되뇌다 보면 내 안에 있던 생각들이 선명해진다. 신기하게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평소에는 잘 모른다. 글을 쓰다가 문득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분명 나인데, 글을 쓰지 않으면 나와 나는 꽤 먼 사이처럼 느껴진다. 글쓰기는 나와 내가 서로 궁합을 맞춰가는 가장 조용하고 내밀한 대화다.
이것은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가까워진다.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오해가 자라고, 이해의 자리를 미움이 채우기 시작한다. 나와 내가 대화하지 않으면 내가 낯선 사람이 되듯이,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모르는 사람이 된다. 어쩌면 관계의 모든 균열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회사는 나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냉정하지만 확실한 생존의 수단이다. 월급날이 되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며칠 뒤면 대출 이자와 카드 값이 그 돈을 가져간다. 월급 통장이 '텅장'이라 불리는 이유를 나는 매달 생생하게 확인한다. 그럼에도 그 흐름 덕분에 커피 한 잔, 밥 한 끼 정도는 큰 걱정 없이 누군가에게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조금 더 내밀한 의미다. 회사 안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많고 소모적인 하루라도, 그 치열함 속에서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고민한 것이 실제로 반영되고, 내가 논의에 참여하고, 누군가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경험은 단순한 노동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다. 물론 회사가 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짜 목적을 찾는 여정이 이어지는 동안, 회사는 그 여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든든한 연료이기도 하다.
가족과 친구는 내가 이 고단한 일상을 버텨내는 진짜 이유다. 아침 수영도, 글쓰기도, 주차 작전도 결국은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그들 곁에 있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존재들을 가장 쉽게 잊고 살게 된다. 정신없이 회사와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그들의 얼굴은 배경처럼 흐릿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들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글 속에서 나를 마주치면, 어김없이 그들이 함께 등장한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써 내려가다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아내와 아이들과 오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내 삶의 정의라는 사실을 나는 이렇게 매번 뒤늦게 다시 배운다.
그 중에서도 아내는 내가 평생 아끼고 돌봐야 할 소중한 존재다. '돌봐야 한다'는 말이 자칫 일방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의무로 쓰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고, 그 선택을 매일 다시 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그 선택을 내일도 할 것이다.
나의 삶은 결국, 내 곁의 사람들로 정의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영을 하고 글을 쓰고 주차 명당을 찾고 회사에서 고민하는 이 모든 과정들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일상의 준비운동들이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나만의 정의를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한 번 내려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