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너를 응원해
집 안에 여벌의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리 루틴을 마루리하고 시간에 맞추어 옷장 앞으로 향한다. 출근하기 전 어떤 옷을 입을지 잠깐의 고민을 시작한다. 화려한 패션 감각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그래도 하루의 시작은 늘 이 작은 선택과 함께 조용히 열린다.
옷걸이에 걸린 윗옷과 아래옷을 이리저리 매칭해 본다. 오늘 하루 예정된 일정에 맞춰 가장 적절한 옷차림을 고르는 과정이다. 나름 중요한 외부 미팅이 있는 날에는 깔끔한 스트라이프 셔츠를 꺼내 든다. 먼 곳으로 출장을 떠나야 할 때는 활동하면서도 단정함을 잃지 않는 옷을 선택한다. 책상에 앉아 온종일 자료만 만들어야 하는 날에는 최대한 몸이 편안한 헐렁한 옷이 제격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예외의 아침도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날 밤 부어라 마셔라 회식을 한 다음 날 아침이 정확히 그렇다. 지독한 숙취에 머리가 깨질 듯 괴로운 순간에는 코디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눈앞에 보이고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허름한 옷을 뒤집어쓰고 집을 나선다. 패션의 완성은 숙취의 강도와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슬픈 진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삶의 태도를 입다
어느덧 꽤 많은 나이를 먹고 지난 시간을 고요히 돌이켜 본다.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이 행위는 내 삶의 태도와 퍽 닮아 있다. 상황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온 것이다. 옷장 속에 걸린 다양한 옷들은 내 내면에 숨겨진 여러 가지 얼굴과 같다. 나는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꺼내어 입으며 이 팍팍한 세상을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직장 생활이라는 커다란 무대 위에서 우리는 매일 다른 배역을 맡는다. 까다로운 윗사람을 대할 때는 한없이 깍듯하고 순종적인 자아를 조심스레 꺼내 든다. 편안한 직장 동료들과 커피를 마실 때는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본모습이 자연스레 나온다. 반면 아직 일이 서툰 후배 사원들을 이끌 때는 단호하고 이성적인 선배의 얼굴을 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페르소나를 매 순간 상황에 맞게 덧입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토록 다양한 얼굴을 가지는 것이 왠지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진짜 내 모습을 숨기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비겁한 행동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필수적인 지혜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표정만으로 이 복잡하고 무거운 세상을 온전히 헤쳐 나갈 수 없다. 타인을 존중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다양한 옷을 챙겨 입어야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어느 상황에 어떤 얼굴을 꺼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힌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눈물로 쌓아온 경험들이 적절함이라는 고마운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수많은 페르소나들이 겹겹이 모여 결국 지금의 단단해진 나를 빚어냈다. 내가 입은 다양한 태도들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되어 차곡차곡 쌓여왔다. 결국 우리가 매일 아침 선택한 사회적 옷차림이 곧 우리의 명함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이런 섬세한 감정의 조절이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 내게 맞지 않는 커다란 어른의 옷을 입은 아이처럼 매사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때로는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페르소나를 꺼내어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엄격한 상사 앞에서 지나치게 편안한 태도를 보였다가 호된 뭇매를 맞은 적도 있다. 어린 후배 앞에서 괜한 권위적인 얼굴을 쓰려다 오히려 비웃음을 산 부끄러운 기억도 생생하다.
잘못된 설정으로 인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고 뼈아팠다. 남몰래 화장실 칸에 숨어 붉어진 얼굴을 감싸 쥐고 스스로를 자책했던 날들이 수두룩하다. 왜 나는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유연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을까 끝없이 후회했다.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태도를 억지로 연기하는 일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었다. 그 서툰 시행착오의 외로운 시간들은 내 영혼 깊은 곳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수많은 상처가 조용히 아물어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삶의 요령을 터득했다. 이제는 나와 세상 사이의 안전한 적정선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법 잘 안다. 내가 완벽하게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출 수 없다는 서글픈 사실도 겸허히 인정한다. 억지로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한다. 대신 내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과 가치들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어린 시절에는 나를 숨기고 타인에게 억지로 맞추는 과정이 마냥 억울하고 힘들었다. 나의 진짜 맑은 모습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무척 컸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것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참으로 소중한 여정이었다. 나에게 가장 편안한 페르소나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페르소나는 엄연히 결이 다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 둘 사이의 완벽하고 평화로운 중간 지점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 서 있는 어린 친구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몸에 맞지 않는 빳빳함으로 이리저리 치이며 힘들어하는 그들의 모습이 꼭 과거의 나 같다. 서툰 페르소나 때문에 어젯밤에도 이불을 걷어차며 홀로 자책했을 그 아득한 마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 모든 어색함과 뼈아픈 실수들은 결국 나만의 핏을 찾아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조금씩 다치고 깨지면서 우리는 비로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편안한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아직 옷장 속이 단출하고 고를 수 있는 얼굴이 몇 개 없어도 전혀 괜찮다. 언젠가는 상황에 꼭 맞는 근사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자연스럽게 꺼내 입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는 모든 어린 친구들에게 작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덧입는 그 모든 페르소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부디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당신만의 적절한 옷을 찾아 입어 가기를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