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겠다
오랜만에 자주 갔었던 동네 카페에 왔다. 식물이 더 늘어났고, 팝송을 고집하셨는데, 음악도 걸그룹 음악 플레이리스트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손님은 없다.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가 빈번하지만 어쩐지 망하지는 않는다. 학원에서 가르치던 초등학생 한 명이 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며 하차했다. 교실 앞을 기웃거리며 인사하려고 머뭇거리는 걸 봤는데, 애써 모른 체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꽤 친하게 지냈다 싶었던 친구와의 관계도 종결되었다. 아쉽지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내가 가르치는 한 중학생 친구는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데, 요즘은 수업시간마다 나에게 그 애가 아니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그냥 웃고 만다. 크고 작게 일상을, 내 세계를 구성하던 것들이 하나둘 변해가는 게 가끔은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중요한 것들은 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생생하고 초연히 돌아가는 마음들도.
요즘은 봐야 하는 영화 목록이라는 사진만 보면 일단 저장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 기본인데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것들이다. 좋은 책, 좋은 시, 좋은 영화. 알맹이는 보지 못한 채 어쩐지 예쁜 조각들만 모으는 듯하다. 프랑스어 과외도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세 달. 사고 싶은 책은 산더미 같은데, 읽을 책도 산더미 같다. 한국에는 좋은 소설이, 시가 뭐 그리 많은지. 나 빼고 왜 다들 좋은 작품을 써내는지 알 수가 없다.
희곡 창작 과제를 마쳤다. 교수님은 내가 쓴 희곡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발상은 참신한데, 주제는 진부하다.”
“글을 보면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그러나 글을 쓸 때 착한 건 결코 좋은 게 아냐. “
날카롭게, 베일 듯한 글을 쓰라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나는 어리둥절하다.
결핍이 주는 것들이 있다. 결핍 없이는 결코 알지 못하는 것들이.
여름이 오나 했는데 답지 않은 서늘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계절에 틀린 옷을 입는다. 원래는 나이가 든다는 게 아쉽고, 과거에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났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스물다섯의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분명히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결국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여행 없이 어떻게 살지 하는 방향으로 늘 귀결된다. 묘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책들이 좋다. 정처 없는 그리움은 어디로부터 온 건지, 어디로부터 발생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할 게 너무 많아서 막막하다. 몸은 그렇게 해도, 마음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돈도 벌며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