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9. 으이구 몰러 - 서울 압구정 성당

by 작약

친구들과의 모임 후 예정에 없이 그냥 가까운 성당을 찾았다. 친구들도 이제 하나둘 자신의 인생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부모의 간병을 하고 평안히 보내드리는 일 그리고 다음 단계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 각자 삶과 죽음에 대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의 우리는 그저 점심때 학생식당을 갈지 아니면 나가서 먹을지, 나가서 김치덮밥을 먹을지 소고기덮밥을 먹을지만 정하면 되었는데 인생 후반은 그렇지 않았다. 더 이상 자력으로 생을 마감할 수 없는 부모를 위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호흡기를 달고 억지로 숨만 쉬는 삶이어도 하는 데까지 지속시키는 게 맞는지. 의견은 각기 달랐고 정답이 없는 얘기였다. 앞으로 남은 생에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B(Birth)와 D (Death) 사이 C(Choice)를 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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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하나가 내가 성당에 간다니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냉담했던 친구였는데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정리한다고 했다. 친구의 쉽지 않은 발걸음에 내가 도움이 되었나 해서 기뻤다.


친구는 올백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두상에 활(弓) 모양의 그린 듯이 예쁜 윗입술선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가락 하나로 나를 웃길 수 있었다. 친구의 엄지발가락은 내가 본 발가락 중에 가장 당당한 자태를 갖고 있었다. 마치 발가락 스스로 엄지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놀러 가서 조금 알딸딸해지면 친구의 발가락만 봐도 빵 터지곤 했다.


“으이구, 몰러….”

골치 아프고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기면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 낙천성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것은 하늘이 주신 재능이자 축복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안 좋은 상황이 생길 때마다 혼자 끊임없이 지하 2층… 3층의 땅굴을 나는 두더지처럼 익숙하게 파대곤 했다. 분명 잘해줬던 만큼이나 상처 준 이들을 떠올렸다. 잡아먹을 듯한 눈빛, 빈정대거나 악다구니하는 말투, 캄캄한 방에서 8시간 혼자 버텨야 하는 짓눌림, 매달렸던 옥상 난간의 감촉… 정작 외우라는 암기 과목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다른 모든 감각을 나는 생생히 기억했다.



상담을 공부하는 친한 동생이 말했다.

“언니 하는 말을 가만 들어보면, 과거에 대한 얘기가 너무 많아. 언니는 특히 부정적 기억을 남들보다 더 깊고 더 오래 생각해.”

“나한텐 글 쓰는 게 미래인데…?”

그렇구나. 여전히 나는 과거에 매여 사는구나. 사실 알고 있었다. 과거가 인생의 70프로란 걸. 그 안에서 수십 년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단 걸. 그래서 나도 진심으로 내 안의 어리석은 나에게 받아치고 싶었다.


“으이구, 몰러…!”

어쩌면 매우 명쾌한 답이었다. 과거 속에 매몰되어 있다고 그래서 결국 미래까지 불안해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다. 금쪽이 프로처럼 과거 영상을 되돌리고 싶은 충동… ‘당신들이 나한테 한 짓을 보라. 당신들이 용가리처럼 뿜는 불에 온전히 타버려 재만 남은 나를 보라’ 그런 되도않는 외침을 멈춰야 했다. ‘그러지 말라고 난 정말 아프고 수치스러웠다고 말해볼걸’ 하는 이제는 부질없는 그 시뮬레이션을 멈춰야 했다. 아팠던 과거와 걱정스러운 미래를 뒤로 하고 대차게 “으이구, 몰러!”를 외치며 현재를 살아야 했다.



아침 묵상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완벽한 계획 안에 있다고 했다. 전지전능함 앞에서 희뿌연 앞날에 대한 우리의 한정된 시야는 그렇게 세상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내가 붙들고 있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다 맡기고 평안함 안에 있어야 했다.

그것이 예쁜 입술선과 발가락이 웃긴 친구가 전해주는 오늘의 교훈이었다.



아치형의 나무 천정이 있는 성전에서 우리는 나란히 기도를 드렸다. 천정의 곡선을 바라보니 왠지 요나처럼 고래 뱃속에 아니면 방주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나무배를 탄 듯이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출렁이며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결국 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키득거리던 우리가 가만히 여기 앉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밖으로 나와 친구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을 남겼다.


아침 묵상을 떠올렸다.

“ 너희 속에 생기를 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리라. 또 내가 주님인 줄 너희가 알리라.”


친구의 가정이 평안하길 그리고 아이들의 새로운 길에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했다. 그리고 나의 지치고 멍든 삶도 말씀대로 다시 살아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