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10. 성령을 믿으며 - 서울 서초동 성당

by 작약

설을 앞두고 거리는 썰렁한 편이었다. 명절이지만 딱히 갈 데도 없는 나는 혼자서 또 새로운 성당을 찾아 나섰다. 나의 원가정은 이미 깨진 것과 다름없어서 명절이 되니 더욱 착잡한 마음이었다.


성당에 들어서자 입구에 커다란 그림이 보였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나타낸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나귀 타고 들어오시는 예수님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들의 구세주로 기다려왔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릴 것이고 그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질 거란 걸. 그러나 그 죽음이 부활이 되어 또 다른 기쁨이 될 거란 걸. 살아보니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었다는 경험을 적잖이 하게 된다. 내 삶의 이 시간도 언젠가는 또 다른 기쁨으로 변할 수 있을까.




대성당 안에선 사람들이 분주히 위령의 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가만히 정면을 바라보자 십자가 예수님 상 위로 성령님을 상징하는 듯한 표상이 보였다. 구름 사이로 강한 세 개의 빛줄기가 임한 채로 비둘기도 하강하고 있었다. 이제껏 본 성전 중에 성령님이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된 것 같았다.

그리고 오종종한 스탠드가 3개씩 무리 지어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초롱꽃들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찾아보니 이곳은 결혼식 하기 좋은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행사 준비로 조금 어수선하긴 했지만 예쁜 하느님의 집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곳이었다. 들리는 말씀은 없었다. ‘성령을 믿으며…’ 미사 중 기도가 자꾸 생각나는 것 밖에는.



사실 ‘성령’에 대해 평신자인 나는 명확히 모른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으로 내 마음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 건 아무래도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천장의 조명쇼가 화려한 관광지를 찾았다. 분명히 가족 단위의 여행이었고 주변에 아이들도 여럿 있었지만 무대에선 애들에게 굳이 권하고 싶지 않은 공연이 펼쳐졌다. 예전 같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겼을 테지만 뭔가 이상했다. 무겁고 어두운 기운에 완전히 짓눌려 가슴이 답답했고 안절부절못하며 당장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 안의 성령님이 여기는 정말로 불편해하시나 봐.’


또 한 번은 너무도 고대하는 소중한 일이 무산된 것 같아 오전 내내 펑펑 운 일이 있었다. 수년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어찌 보면 무모한 희망 하나로 버텨온 일이었는데 이미 다른 데서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바보 같이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스스로의 한심함을 탓하며 또 절망의 나락으로 발이 빠지는 참이었다. 골이 아플 정도로 엉엉 울다 멍하니 간증 프로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마음속에서 준엄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너는 나를 의심하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순간에 내 머릿속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너무나 단호했고 엄격했다. 내 ‘마음의 소리’는 저런 식의 어투를 쓰지 않았다. 순간순간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마다 ‘진짜 계시죠? 계신 거 맞죠?’ 의심되고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마다 그 저릿해서 숨이 멈춘 순간을 떠올린다.



나오는 문 위의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라보았다. 반원 형태였고 그 푸른빛에 청량함을 느꼈다. 밖을 나오자 2월인데도 3월 중순의 따사로운 볕에 벌써 봄인가 하며 깜짝 놀랐다. 아래로 내려가자 폐백실과 피로연 식당의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지 못했는데 새롭게 인생을 준비하는 커플들을 상상하니 흐뭇해졌다.

요즘은 사는 게 하도 힘들어 결혼을 안 한다는 분위기라지만 그럼에도… 그리고 그 난리를 치고 살았음에도 내 삶에서 결혼을 빼고는 인생을 논할 수가 없다. 너무 어릴 때 준비가 안 돼 만나 ‘조용히 좀 사는 게’ 소망이었던 우리는 이제 서로 모난 곳을 다듬으며 단단하게 지금껏 버티고 있다. 긴 시간이 흘러 나는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이며 예정된 계획이었음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느님의 역사하심’


최근에 그것도 문득 기차간에 앉아 그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왜 대체 내 인생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를 투덜대며 혼자 처량하게 남산의 노란 은행잎 깔린 길을 걸었다. 남편을 처음 만나기 며칠 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그때에 하느님은 남편과 전 여자친구 사이를 갈라놓으셨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그 여자친구에게 내가 겪은 고난을 왕창 떠넘길 수 있었는데…!”하며 나는 아쉬워한다. 하느님은 어쨌거나 그리 정하셨고 피어보기도 전에 난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어 볼 기회를 잃었다. 그렇게 시간은 살같이 흘렀고 아줌마가 된 나는 이번 부활절에도 뻣뻣한 남편의 팔을 잡고 성당으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