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방주 안에서 - 서울 고덕동 성당
아침에 자잘한 언쟁이 있었다. 가슴이 또 마구 벌렁거렸다. 나 못지않게 남편 또한 원가정에 대한 상처로 우울과 분노를 누르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순간순간 그 부정적 감정이 고개를 쳐들 때가 있는데 그때는 내가 재빨리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오늘은 고덕동에 가자.”
“어…?”
남편이 어릴 때 살던 곳으로 이끌었다. 차를 몰면서 이젠 너무나 변해서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그는 계속 주변을 두리번댔다. 성당에 들어서자 아주 착해 보이는 누런 삽살개가 따뜻한 볕을 쬐며 살랑거렸다
성당 안은 캄캄했다. 밝은 외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앞뒤를 둘러보니 이곳은 지난번에 갔던 성당보다 더욱 방주와 같았다. 사진을 찍어도 어둡기만 해서 연신 찍으며 보정을 했다. 시끄러운 셔터 소리가 성당 안을 울렸다. 이내 폰을 거두고 나는 가만히 앉아 말씀을 구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고 성령께서 주신 말씀인 것이 맞았다. 저 구절은 내게 한 번도 깊이 와닿지 않은 구절이었으니까. 그냥 너무 당연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아는 정도였다. 정말 방주 안에 있는 것 같아서 거친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상처 입은 환경으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너와 네 집’이 바로 문제였다. 부모에 대한 처절한 실망과 원망은 해결은커녕 갈수록 날 것 그대로의 아린 속살을 드러냈다. 갈등은 각각 양쪽에서 번갈아 또는 동시에 서라운드 입체음향처럼 증폭되어 우리의 심신을 뒤흔들었다.
‘너무 싫어요… 진짜로요…’
친한 동생이 전에 말했다.
“언니랑 오빠는 이 전쟁 같은 감정의 폐허 속에서 서로 꼭 붙들고 의지하는 어린애 같아.”
이 나이를 먹고도 어린애 같다고 하면 기뻐해야 하나…. 오래전 프랑스 흑백 영화 ‘금지된 장난’이 생각났다. 그 전쟁터에서 꼭 붙어 있는 아이들처럼 한 번씩 폭격이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붙들고 있다. 분명 나이를 먹었는데 부모 문제에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애가 되어버렸다. 사회에선 멀쩡한 가면을 쓰고 버티는데 말이다.
‘그래서 믿으면… 다 해결이 될까요…? 구원이 뭔지는 정확히 안 와닿는데 그래도 잘 마무리가 될까요…?”
독백을 하는데 나는 점점 도가 트고 있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 그걸로 된다니 더 애써보기로 한다. ‘언제는 안 힘들었나’ 하면서 그리고 ‘진짜 이 정도까지 했는데 이젠 복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
묵상 영상의 신부님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랬다. 그래서 나는 딱 그만큼만 힘을 내보기로 한다. 오늘 하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