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생명수가 필요한 시간 - 서울 대치동 성당
남편이 오후에 강릉으로 갈 기차를 타야 했다. 착잡한 표정이 가득해서 뒤돌아 헤어지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강릉으로 향할 때 예전 생기 있었던 그의 얼굴을 알기에 과중한 숙제를 하러 가는 지금 모습을 대하니 안쓰러웠다.
폰 속의 지도를 이리저리 돌리며 또 새로운 성당을 찾았다. 문을 열자 황금색 벽면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 요셉님이 보였다. 가끔 궁금할 때가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본인 배 안에 품으신 예수님이 좀 더 가까이 와닿았겠지만 성 요셉은 어떠셨을까. 꿈에 나온 천사의 명으로 물론 예수님을 아들로 받아들이셨겠지만 자신의 아들이자 구세주이신 대상에 복잡한 감정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자식의 머리가 커질수록 친부모자식 간에도 이리 관계가 복잡해지는데 하늘이 보낸 아들을 키워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 나는 INFJ다. 별상상을 다한다. 이분들의 표정은 이리도 자애로운데 말이다.
성전은 조금 어두웠지만 조명으로 인해 정면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기도가 그다지 잘 되지 않아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십자가와 황금색 벽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씀은 들리지 않았고 예수님의 얼굴이 잘 안 보여 맨 앞 좌석까지 자리를 옮겼다. 쇠로 제작된 것 같은 예수님의 몸은 가는 나뭇가지와 같았다.
맨 앞으로 가도 도무지 예수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턱을 완전히 쳐들고 어린애 같은 자세로 십자가 밑에서 한참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안 보였다. 무슨 초등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턱을 쑥 내밀고 앉아있는 모자란 학생처럼 보였을 것이다.
별 감흥이 없는 순례를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데 복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였다. 작품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마치 하늘에서 생명수와도 같은 성령이 내리셔서 지상의 사람들이 그를 받고 평안해지는 모습이었다.
‘생명수’.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이었다. 갑자기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칠 때가 있는데 그땐 놀이공원에서 쇠망치로 기기를 ‘땅!’ 내려칠 때처럼 붉은 화살표가 수직상승했다. 모닥불이 소리를 내듯 파삭파삭 마음이 타들어가곤 했다. 분명 내 마음인데 전혀 조절이 되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순식간에 악해질 수 있는 거였다. 뜨겁고 메마르고 바로 분출될 만큼 상당한 압력을 품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사람이야?’
그때그때 달랐지만 뭐 좋은 말일 수가 없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정말 그러면 되는데 말이다.
목이 말랐다. 아주 시원한 물. 내가 발 붙이는 땅을 다 태워버리고 싶은 불붙는 마음을 꺼뜨리시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생명수.
사람이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 작품 또한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밖을 나오자 입구에 성가족상이 보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거였구나… 오늘의 말씀은. 왈칵 눈물이 솟으려 했지만 꾹 참았다.
‘글쎄요… 그게 되려나 모르겠어요… 아직은.’
주신 말씀이니까 그게 미션이니까 하긴 해야 할 텐데… 나중에요. 좀 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