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13. 뜻밖의 선물 - 분당 성 요한 성당

by 작약

집에서 꽤 먼 거리였지만 느닷없이 오늘은 분당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을 향한 발걸음으로 어젯밤 머릿속을 꽉 채운 어둠을 비워내고 싶었다. 청정한 공기가 필요했다. 때로 무겁고 탁한 기운은 점점 몸 전체로 퍼져나가 나를 꽉 채우고 그로 인해 제 풀에 뻗어버리게 만들었다.


대성전은 언뜻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컸다. 최근에 본 성당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규모였다. 신자석도 아치형의 층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면의 대형 파이프 오르간과 함께 존재감 있는 비주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형 성당에서의 미사는 까마득히 오래전 일이라 이렇게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드리는 미사는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정말이지 장중하고 경건할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겼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이상하게도 현실을 초월한 듯한 특별한 힘을 전하니 말이다.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관계자분들이 일을 하시는 것 같아 금방 나와야 했다. 말씀도 딱히 들리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물러났다. 옆면 벽에 “나는 생명의 빵이다”란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으로 내려가려다 문득 뒤를 돌아다봤는데 안쪽에 파란 벽이 보여 조심스레 더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주 청량한 색깔의 푸른 타일들이 고난 가운데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그 위로 임하시는 성령을 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내 안의 더러움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나지막한 회전 경사로의 벽에는 성경의 장면들을 담은 대형 타일 벽화가 이어졌다. 황금색 최후의 만찬과 오병이어, 말구유 안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십계명,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각각의 그림들은 어둠 속에 있다가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면 센서로 불이 켜졌다.





“우와… 이게 뭐야…?”

처음 보는 광경에다 이 아름답고 커다란 벽화를 방해 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음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아름다움은 풍성하게 나를 채웠다. 경사로를 천천히 빙글빙글 내려가면서 새롭게 또 나타나는 광경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작품들은 일반 그림과 같이 벽의 일부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벽의 전면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은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이전 중세 시대에는 성직자와 귀족 계층 외 대다수가 라틴어를 알지 못해 성화로 성경을 전했다고 들었다. 말씀을 보고도 그 뜻을 깊이 알지 못해 중세 농노들만큼이나 우매한 나는, 이 파노라마 같은 성화를 접하며 각각의 시대와 사건을 관통하는 관찰자가 된 것 같았다.

맨 아래층에 이르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복사본을 볼 수 있었는데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소장 작품과 동일한 재질과 크기라고 한다. 피에타상을 이렇게 코앞에서 보는 기쁨 또한 누릴 수 있었다.


건물을 나오며 이곳 성당은 예술에 참으로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내부 곳곳에 아름다운 그림들과 설치 조형물이 많아 성당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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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나오자 성모상 뒤의 하늘도 예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서양 고전 건축과 벽화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 정말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듯 온전히 충만한 마음이었다. 감사의 뜻으로 촛불 봉헌을 했다. 성모님께 우리 가정을 지키시고 평안을 주시게 빌어달라고 청했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성당을 올려다봤는데 오후의 햇살이 아름답게 성당을 에워싸고 있었다. 미소가 지어지는 그 충만함에 감사한 순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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