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어처구니없이 웃기시는 것은 - 분당 이매동 바오로 성당
집에서 좀 먼 거리의 분당을 찾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며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을 참이었다. 그런데 커다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대성당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성당으로 가는 복도 바닥에서 각자의 돗자리에 자리 잡고 앉으신 여러 분의 할머니들이 ‘트로트와 함께 하는 요가 수업’ 중이었다. 성당에서 요가를…?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놀라 거기 서버렸다. 대성당 앞을 딱 막고 계셔서 어디로 돌아갈 상황이 아니었다. 내 작은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할머니들 사이를 비집고 돗자리를 밟고 들어서서 할머니들의 즐거운 요가수업을 방해할 순 없었다. 그리고 이미 귀를 울리며 쿵작쿵작 대는 뽕짝 리듬과 두 팔로 지휘하듯 “헛둘헛둘”하는 강사의 기합 소리에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혼자 웃음이 터져서 밖을 나왔다. 할머니들의 요가 수업과 뒤풀이가 끝날 때까지 주변 다른 성당을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여기 오는 데만도 한참이라 이대로 허탕치고 갈 수는 없었다.
시간을 맞춰 다시 성당을 찾아가려는데 버스를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몇 십분 만에 온 마을버스는 분당의 작은 정거장은 모두 다 지나치는 것 같았다. 오후 6시까지 개방이라 마음이 급해졌다. 허둥지둥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성당의 어린 직원분들이 청소를 시작했다. 제대 앞을 오른쪽 왼쪽으로 시계추처럼 오가며 걸레질을 슬라이딩하듯 하는데 또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집중이 안 됐지만 주시려는 말씀이 있나 귀를 기울였다.
“너는 내 피을 받아마시라.”
‘아… 다 아시는구나.’
사실 나는 어제도 치밀어오는 분노에 휩싸였고 아주아주 못된 생각을 했다. 그런 스스로가 용납이 안돼 오늘 급히 성전을 찾은 터였다. 주님은 이 말씀을 주시며 예수님의 보혈에 온전히 맡기라시는 것 같았다. 걸레질하는 언니들 틈에서 겨우 떠올렸는데 ‘이거 맞죠…?’ 하며 개방시간 안에 빨리 밖을 나왔다. 오늘은 종일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일이 많았다.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데 어처구니없이 웃음이 나는 상황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런 날 중 하나는… 엄마의 장례식이었다. 중환자실에 간지 이틀이 채 되지 않았고 형제가 없는 나는 삶의 반이 그날로부터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엄마의 화장을 보며 기절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그날은 오늘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기가 찬 상황들이 이어졌다. 영정 사진을 내가 들어야 했는데 사진이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 키가 작은 나는 영정 사진 위로 어정쩡하게 턱을 걸치게 됐고 국화꽃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발이 걸려 앞으로 대(大) 자로 고꾸라져서 엄마 장례식에서 몸개그를 하게 될까 걱정이었다.
유골함을 받아 들었을 때는 TV에서 자식들이 울면서 말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엄마의 마지막 체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도 유골함을 끌어안고 곧 터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안아도 함은 차가웠다. 불 속에서 금방 나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장례 관계자 아저씨가 자신 있게 얘기했다.
“그게 신형이에요. 요즘 신형은 두 겹이에요.”
최신형 기기도 아니고 대체 유골함을 왜 신형으로 만든다는 말인가! 유골함을 안을수록 배에 닿는 차가운 사기 재질에 싸르르 아랫배가 아파왔다. 울기는커녕 복통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람.
“엄마, 나 배 안 아프게 해 줘.”
엄마가 여자는 아랫배가 따뜻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는데… 엄마한테 계속 빌어야 했다.
가장 난데없는 장면은 친구가 연출했다. 장례식장에 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친구 하나가 꿀송편을 집어 들었다. 전에 소개한 발가락만으로 웃기는 애였는데 그 친구가 ‘앙…!’ 송편을 베어 물자 꿀이 치솟았다. 주변 친구들 머리 위로 공중에서 끈적끈적한 꿀이 날벼락처럼 뚝뚝 떨어졌다. 애들은 “야! 너…!” 하고 빽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스레 꿀을 닦아댔다. 나는 황당해서 웃다가 울어버렸다.
안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땐 몸도 마음도 지치고 넋이 나가 멍해졌다. 나는 울다가 기절하지도 앞으로 고꾸라지지도 않았다. 그제야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하느님의 배려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후 4년간은 더욱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그래도 하느님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내가 엄마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정신을 놓고 눈물에 허우적대어 장례를 망치지 않도록 돌봐주셨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나는 때로 분노에 휩싸이고 무너지고 또 울어댈 테지만 어쩌면 순간순간 피식 웃으며 결국은 일어나겠지. 그분이 ‘참으로 도우신다고 참으로 의로운 그분 오른손으로 우릴 붙들리라’고 약속하셨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