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물에 빠진 베드로처럼 - 제주 서귀포 성당
성당 외관이 예쁜 서귀포 성당에 도착했다. 오래된 성당은 그저 둘러보기만 해도 묵직한 안정감과 차분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 안정감이 너무도 좋다. 아마 ADHD 성향에 늘 심적으로 불안하고 붕 떠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귀포성당은 1900년에 설립되었고 여기로 자리를 이전한 건 1937년이라고 한다.
1900년부터라면 내가 바라보는 이곳은 얼마나 많은 세파를 견딘 걸까. 건물로 들어가기 전 만난 신부님은 중세 영화에서나 보던 갈색 튜닉과 같은 차림이셨고 성전 안에선 수녀님이 기도 중이셨다. 그 엄숙함에 찰칵대는 내가 방해가 될까 조용히 바라보다 나왔다.
서귀포 성당에서 내 눈을 붙든 것은 물에 빠진 베드로와 그를 바라보는 예수님을 그린 그림이었다. 알려진 명화 같지는 않았으나 넘실대는 파도의 물빛깔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붙잡으려는 베드로의 간절함이 전해졌다.
나의 심정도 이와 같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 같이 속물적인 이가 난데없이 성당 순례기를 쓰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수십 년의 인생이 온전히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다. 나는 무너졌고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동안 안정적이라 믿은 신기루 위에 살고 있던 셈이었고 그것은 다른 이의 피눈물 위에 지어진 허상이었다. 마치 떠다니는 홀로그램처럼 존재한 줄 알았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음은 갈가리 찢어짐을 넘어서 저 혼자 포효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시커멓게 갈라진 땅 사이로 들끓는 용암과 터지는 화산 가운데 서 있었고 어떤 때는 그림 속 물결보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파도에 셀 수 없이 따귀를 맞고 있었다.
‘진짜로 맨 정신에 못 살겠어요….’
붙들라고 해서 붙들어 보기로 했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모르겠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잠깐의 위로는 그때뿐이었다.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하셨지만 그것이 세상 어려운 일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세상이 악하고 내가 그리도 악한지 처음 알았다.
‘얼마나 복을 주시려고요…. 도와주세요.’
모태신앙도 아니고 믿음이 깊지도 미사를 안 빠지는 것도 아닌 나는 저 파도보다 요동치는 마음이 스스로 잠잠해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성당을 배회하고 있다. 집중하며 기도하기가 버겁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면서도 하느님의 집을 찾고 있다. 성경 속 ‘식탁 밑의 부스러기라도 바라는 여인’처럼 자비를 베풀어달라며 말이다. 그림 속 베드로는 안아달라는 아이처럼 예수님에게 매달리려 하고 있다. 절대자가 보시기에 나도 저런 모습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몸도 마음도 이제 너무 지쳐서 내 힘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바락 조바심을 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창조주의 전능함을 구하고 있다.
백여 년이 넘는 시간을 굳건히 서있는 성당을 찾으며 그 자리에 켜켜이 쌓인 믿음이 내게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