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17. 그 스물다섯의 삶 - 제주 용수성지 & 제주표착 기념성당

by 작약


드디어 이번 제주 여행의 가장 중요한 순례지 용수성지에 다다랐다. 친구에게 아름다운 성지로 추천받았고 제주에서 잘 알려진 성지라 설레는 마음이었다. 성당과 기념관 두 개의 건물 사이로 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사진으로 보았던 성당 앞의 흰 꽃밭은 아직 시기가 이른 듯했다.


성당에 들어가자 제대 앞에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모신 것이 보였다. 사실 우리 본당 성당에서도 김대건 신부님을 섬기지만 이제까지 나는 그저 너무 유명한 분이니 의례적으로 고개를 꾸벅하는 정도였다.




이곳 용수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다 풍랑을 맞고 표류한 곳이었다. 죽음의 숱한 위기를 넘기고 제주 용수리 해안에 도착하셨다가 다시 경기도 용인으로 올라가 순교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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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서 간단히 기도를 드리고 옆 건물인 제주 표착 기념관으로 향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성물방에서 작은 성모상과 묵주팔찌를 구입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정면에 떡하니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글귀와 성모님의 그림이 보였다. 기념관에는 용수리 해안에서 박해를 피해 주민들에게 몸을 숨기며 신부님 일행이 비밀리에 드린 미사 모형도와 각종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봐도 허술해 보이는 나룻배에 가까운 목선으로 폭풍우 치는 중국과 제주도와 서해를 오가셨다니 정말 기적이 아니고서는 14명의 목숨을 모두 부지하기가 어려웠을 듯싶었다.



풍랑으로 저 작은 목선을 탄 신자들이 슬피 울자 김대건 신부님은 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성모님의 메달을 내보이며 사람들을 독려하셨다고 한다. 그 ‘기적의 메달’은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성모님의 발현하실 때 자신의 모습 그대로 메달을 만들라 명하시면서 메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필요한 은총을 전구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데 유래되었다. 사실 나도 성모님이 그려진 책갈피에 달린 메달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그 뜻인지 정말 몰랐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김대건 신부님의 나이였다. 그동안 봐온 그림과 조각상으로 당연히 40, 50대로 짐작했는데 참수당하실 때 나이가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신부님은 40 여 차례 문초를 받으시고 양쪽 귀에 화살이 뚫린 채로 몸이 공중에 들어 올려져 사형장 주변을 3번이나 돌림을 당하셨다 한다. 무슨 생각을 하면 남의 귀에 화살을 꽂을 수가 있는지 예전 기괴한 고문 방법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고초 후 한창나이인 20대에 김대건신부님은 12명의 망나니들이 휘두르는 칼에 결국 순교하셨다.


“나는 천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 여러분도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너무도 익숙했지만 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김대건 신부님의 생을 접하며 할 말을 잊은 채 엄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밖을 나오자 신부님이 타신 ‘라파엘호’를 재현한 모습이 보였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지만 좀 더 따뜻해졌다. 봄햇살에 이곳은 곧 꽃이 만발한 그림 같을 것이다. 한쪽 편에 잔물결 치는 바다와 함께 뽀얀 성당과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니 그동안 어지럽게 널뛰던 마음은 안정되고 충만해졌다. 180여 년 전 죽음같이 몰아치는 폭풍을 이기고 이 해안에 표착하여 감사기도를 드리신 김대건신부님처럼, 여기 있는 것만으로 평안하고 행복해진 나는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