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사치
윤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 타인이 서로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이다.
문제적 소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의 머리말 부분에 에르노는 ‘이 책은 도덕적(윤리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곤 매달리게 될 것 같다.’고 서술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48살의 문학교수이자 작가인 에르노는 36세의 알랭드롱을 닮은 러시아 외교관과 불륜 관계에 있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하며 소설의 첫 문장을 시작한다.
단순한 열정일 수 있는 유부남 A(러시아 외교관)와의 육체적 탐닉과 열정에 빠져 일상 파괴되어 간다.
사랑은 지는 게임이기(Love is losing game) 때문에 더 사랑하는 쪽의 고통이 극대화된다. 주인공 일상의 모든 일련의 일들과 생각에 A가 마약처럼 파고든다.
나는 이 열정을 사랑이기보단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은 결과는 개인의 일상을 파괴한다. 오로지 그와 만남을 가지는 순간이 열정의 절정(쾌락의 정점)이 이르고 아닌 대부분의 시간은 불안과 고통으로 지속된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열정하고 탐닉하는 부분은 정신적인 상호 교감이 아닌 육체적인 탐닉에 거의 대부분 집중되어 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 퇴행 또는 파괴되면 자신의 신념도 흐려지고 사리분별에 취약해진다.
만약 상호적인 사랑이라면 자아의 상실을 야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자아나 정체성의 확립에 긍정적 영향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이 아닌 득이 되어야 한다.
같이 있을 때 미치듯이 좋다기 보단, 그 사람과 같이 있든 멀리 있든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안온한(안정되고 따뜻한) 감정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2년간의 감정의 파고를 겪은 작가 에르노는 혹평과 비난 소지가 될 수 있는 이 소설을 왜 썼을까?
책의 말미에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 한 남자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을 구분시켜 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교양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양은 개인의 지식의 폭을 넗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스펙트럼을 넓혀준다..
교양은 넓이이고 전문성은 깊이이다. 땅을 깊어 파기 위해서는 우선 땅을 넓게 파야 된다.
사랑은 상호적인 작용으로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에 대한 여러 가지의 사랑 대상에 대한 경험들은 관계한 사람들과의 넓이로 치환될 수 있다.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인지도 모르는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여 그것을 글쓰기로 기록을 했다.
앞서 얘기했던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했다는 말이 자아의 대한 깊은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넓이와 깊이를 두루 경험한 한 사람의 사유는 우주처럼 광활할 수 있다.
본인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는 직접적 경험을 통해 배운다.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작가에게 있어 이런 경험과 세세한 자신의 감정의 기록들은 엄청난 자산이다.
이 책을 윤리가치관적 측면에서 한계와 결부하여 생각해 보면, 한계까지 접근한 사람만이 자신의 도덕적, 윤리적 신념의 기준을 공고히 할 수 있으면,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을 오롯이 관찰할 수 있으면 자신의 선을 지킨다.
그래서 자신의 코어가 단단해진 사람은 자신을 파괴하지도 타인을 파괴하지 않고 자신의 확고한 윤리적 기반으로 당당하게 삶을 살아낸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서로에게 자아의 상실이 아니라 자아, 정체성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든다.
상대방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는 사랑은 그래서 이기적이다.
불륜을 행하는 사람들의 태반은 그래서 이기적이다. 그것이 육체적인 탐닉만이면 더더욱 사치이다.
사치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또는 그녀에게 가야 된다.
사랑에 저울질과 계산 따위는 없다.
그래서 A와 에르노는 서로에게 단순한 열정이었으며 사치였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