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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밀러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비평

자유와 영면

by 조지조

나는 15년 차의 세일즈맨이다.




주로 자동차 부품에 들어가는 엔지니어링 폴리머(Engineering Polymer) 원료 및 기타 화학재료의 기술영업을 해서 밥벌이를 한다.


단순히 말해서 플라스틱 원료를 파는 세일즈맨이다.


가끔 주변에 지인들에게 폴리머(플라스틱)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보통 업계사람이 아니면 폴리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폴리머아티스트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한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주인공 윌리(Willy)처럼 나도 나름 내 직업에 나름의 자긍심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플라스틱 기술영업은 종합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 영역, 감성적 영역, 창의적 영역, 인내적 영역 복합된 직업군으로 본다.


첫째, 화학재료의 기계적, 화학적, 물리적, 성질과 원리를 이해하고 까다로운 고객의 제품의 요구사항에 맞는 플라스틱 원료를 기술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추천하는 일은 녹록지 않다. 주로 자동차 부품회사의 까다로운 설계, 구매, 개발 만나 논리적으로 숫자에 기반해 설명하고 자료를 만들어 굳어있는 그들의 마음을 녹여야 한다. (논리적 영역)


둘째, 설계, 개발, 구매, 연구소, 생산팀 담당들 중 한 명이라도 잘 설득이 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슈퍼 공감능력과 눈치를 발휘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주고 때로는 사적인 이야기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감성적 영역)


섯째,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새로운 결정, 새로운 재료, 창의적인 자료, 남들과 구별되는 본인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일을 진행해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창의적 영역)


보통 자동차 신차종 부품에 플라스틱 재료를 공급하는 일은 앞서 말한 논리적, 감성적, 창의적 영역이 잘 버무려져 영리하고 성실히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까지 장벽을 넘어야 개발 프로젝트에 성공할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아 쉽게 성공하는 사례도 있지만, 보통 이 개발 과정은 최소 2년이 걸린다.



마지막으로, 인내적 영역은 가장 숭고한 영역이란 생각이 든다.


세일즈에 있어서 인내적 영역의 나의 과거 숭고한 개인적 사례를 들어보겠다.



어떤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실 상기 4가지(논리, 감성, 창의, 인내)에 앞서 흔히 얘기하는 4가지가 없는 슈퍼갑의 프로젝트에 대한 허락과 동의가 먼저이다.


사실 이 과정이 전체 과정의 절반이 넘는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Keyman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세일즈와 실적 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바야흐로 약 7~8년 전 슈퍼갑 Keyman(매출 조 단위 회사 회장과 절친)과의 저녁자리에서 조 단위 회사의 동의를 얻기 위해 우리 회사가 잘 보여야 하는 자리였다.


당시 회사의 매출 기여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나는 최소 연 50억 이상의 매출이 기대되는 상기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 Keyman(K님이라고 지칭)과의 중요한 저녁자리에 선발투수로 홀로 그해 가장 중요한 전장에 배치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MBTI측면에서 E(Extrovert) 함유량이 순도 100%이기 때문에 어떤 거물이든 불편한 사람이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 졸거나 기 빨리는 일은 없다. 나름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기에 대도 센 편인듯하여 남들이 하지 못하는 질문도 가감 없이 처음 보는 분들과 편안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나의 급여나 돈줄, 일신상의 권력을 주무르는 갑분들에게는 권력의 위치에 따라 아부까진 아니더라도 메서드 연기도 때로는 가능하다. 세일즈를 하다 보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급 연기를 하는 업계 동료들이 수두룩하다. 세일즈에 비애일순 있지만, 난 그래도 고객에게 연기를 최소화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려 애를 쓴다.


암튼, 그 중요한 날 K님과의 1차 술자리(각 소주 3병 이상)가 무르익고 2차에 가서 참사가 일어났다. 1차에서 K님은 나에게 자신이 SKY출신이고 아버지는 동경대 법대를 나오시고 박정희 때 검사를 하셨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K님에게 너는 무조건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아버지 윌리처럼 아들에게 아버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라고 가스라이팅을 하셨다고 했고, 자식 된 도리로 서울대보다 못한 학교를 가서 콤플렉스가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셨다.


또한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의사, 검사, 중견기업 이상의 회장들이라며 너스레도 많이 늘어놓으시며, 술병이 비워지는 양과 속도만큼 정확히 생각하시는 뇌의 용량이 비워지시고, 슈퍼을 인 나에 대한 반말의 속도도 빨라지셨다. 자신의 영광스럽고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무용담과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놓은 양만큼 비례하게 당신의 어깨뽕의 두께와 높이도 많이 올라가셨다. 그때부터는 상기에서 내가 이야기한 세일즈(영업)의 가장 숭고한 영역이 즉 인내적 영역이 나를 뇌를 지배했다. ‘참아야 된다, 버티자 50억!’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없이 치솟은 K님의 어깨봉과 두께로 인해 맞은편 손님과의 어깨빵에서 K님은 이성을 잃고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하셨다. K님을 말리기 위한 나의 노력의 산물로 아이러니하게 K님은 나에게 화풀이를 하실 생각인지 ‘XX 네가 왜 말려. 이거 안 놔 XX!’ 구수하게 구사하시며 나의 안면에 정확히 2~3방 정도의 주먹마사지를 은혜롭게 선사해 주셨다. 코와 입 주변에 마사지를 깊숙이 받은 결과 너무 시원했던 나의 피부밑에 숨여있는 혈관의 빨간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해 주며 내 하얀 와이셔츠를 아름다운 선홍색으로 수놓아주었다.


발가락 끝부터 머리끝까지 온신경을 집중해서 K님께 주먹으로 마사지를 두배로 응수하고 싶은 마음을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앞서 말한 인내의 영역이 풀가동하는 시점이었다.



인사불성이 된 K님의 사모님께 전화받아 어찌어찌 마사지 사건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 비가 많이 내렸다.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우산 없이 한없이 비를 맞으며 선홍색으로 물든 와이셔츠 입고 귀가한 나는 가자 마자 아내 몰래 피 묻은 와이셔츠를 벗어 버려 버렸다.


슬폈지만 슬프지 않았다.


비루하게 마사지에 대한 보상으로 실적이 아른거렸다.


다음 날 K님께 은혜롭게 안면 마사지를 받아 보톡스효과의 빵빵한 얼굴로 회사 출근후하여 대표에게 어제저녁 모든 사건을 소상히 보고했다.


대표는 나에게 정말 대표로서 미안하다고 했고, 나의 아내에게도 직접 사과 문자까지 보냈다.


그리고 나에게 ‘조 과장이 그 업체 K님과 그 프로젝트 안 한다면 우리 회사도 안 할 거라고 했다. 나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K님께 먼저 안부전화 드린다 고하며 대답을 대신했고, K님은 나에게 사과했다.



그 해 K님의 마사지덕에 우리 회사는 최고 매출을 기록했고, 나는 차장으로 승진했다.


승진과 상여금의 소식을 영업용 차량에서 들은 나는 기뻤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으며, 슬폈지만 슬프지 않았고, 약간 애매한 광기의 표정이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책 표지(이글에 업로드한 사진)의 주인공 윌리의 표정과 흡사했다.


가장 숭고한 영역 인내적 영역의 힘이 발휘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영업 또는 세일즈는 경제 활동 즉 밥벌이의 핵심요소로 재화 또는 서비스를 파는 일이다.


플라스틱 원료를 팔든, 정수기를 팔든, 보험을 팔든, 숟가락을 팔든 인간의 영리 행위의 본질에는 영업(세일즈)이 맞닿아 있다.



영업의 최전선에서 항상 나처럼 애쓰며 평생을 살다 해고당하고 잘못된 부성애로 위에 이야기한 표정으로 밥벌이의 족쇄를 벗기 위해 가족을 위해 또는 자신의 진짜 자유를 찾아 전속력으로 핸들을 잡고 차를 몰아 광기 어린 웃픈 표정으로 구속과 속박이 아닌 진정한 자유의 유토피아로 가는 듯한 윌리의 표정이 짠하고 씁쓸하게 나의 옛 마사지 경험과 오버랩된다.



윌리의 인생, 아들 비프의 인생, 엄마 린다의 인생은 대공황 때의 시대상과 연결해 보아도, IMF때 시대상과 비교해 보아도, 현재의 시대상과 비교해 보아도 누군가의 인생의 형태와 본질은 비슷한 듯하다. 직업적 제약으로 인한 사고의 축소, 메타인지의 부족, 새장 같은 세상을 우주로 착각하는 주인공 윌리의 잘못된 부성애가 낳은 가족의 고통과 애환.



마지막 린다의 대사가 마음을 후비면서 이상하게 뇌리를 맴돈다. We’re free...



여보, 절 용서해 주세요. 울 수도 없어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울 수도 없어요. 절 좀 도와줘요.. 또 출장 가신 것만 같아요.. 돌아오시길 계속 기대하고 있어요... 오늘로 마지막 집세도 치렀어요... 오늘 말이에요.. 빚도 갚고 홀가분해졌는데... 마음 편히 살 수 있는데... We’re free and clear. We’re free. We’re free.... We’re free.....



‘We’re free’를 강조한 아내 린다의 마지막 대사와는 역설적으로


윌리는 어쩌면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되고 고단 함 없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자유로운 곳으로 운전대를 잡아 달려가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영면이 진정한 자유일 수도 있다.



나도 이제 그만 애쓰고 싶다.



쉬고 싶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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