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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비평

고도는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by 조지조

오늘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처럼 앙티로망(전통적인 형식이나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는 수법으로 쓰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보려 한다.


이 글은 주인공들이 기다리는 고도의 존재처럼 맥락과 논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관통한 시대를 정면으로 살아간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왜 썼을까?


보통 나는 소설이나 서사가 있는 작품 중 은유와 비유가 있는 작품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희한하게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단어의 의미와 문장의 의미 은유, 해석 등의 고려들이 생각만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일까?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내가 존재하는 걸까?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정확히 뭔지 알기나 할까?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책을 읽고 무력함을 느끼고 아래 영화의 늙은 보안관의 심정이 느껴졌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코엔 형제의 영화 ‘No Country for Old Man’(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리 존슨이 분한 나이 든 보안관 역할은 세상의 부조리에 무력하다.


제목에서의 노인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무력하다. 비합리적이고 잔인하게 변해버린 세상은 이성적인 늙은 보안관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는 세상은 부조리와 불합리성, 온갖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용납하기 어려운 극악무도한 사건들 속에서 험악해져 가는 세상을 지키고자 보안관으로서 마지막까지 노력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은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은퇴 후 아침이 되자,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온 어젯밤 꾸었던 두 가지 꿈을 이야기해 준다. 첫 번째 꿈은 시장에서 아버지가 돈을 주셨는데 잃어버린 꿈, 두 번째는 눈 내리는 겨울밤 아버지와 험난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어린 자신을 위해 어둠 속에서도 앞장서서 작은 불씨를 지피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자신 앞에서 불씨를 지킨 채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실 걸 알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소설과 영화를 끝맺는다.


아버지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은퇴한 늙은 보안관이 아내와 나누는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고 은퇴한 노인 보안관은 세상의 진리 따위를 설파하지 않는다. 시덥지 않은 그냥 그런 이야기를 떠든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소설의 대화와 비슷하다. 별 의미가 없다.



한 가지 다른 부분은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는 점이다.


그럼 고도는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희곡에서 다른 인물 포조는 이야기한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에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서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맙시다. 사람마다 조그만 십자가를 지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지네.’



주인공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사라지는 것일까?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린다...


왜 기다릴까?


또 그들이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존재하는 것일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 것처럼, 나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오늘 올해 처음 9시간이라는 잠을 푹잤다. 기분이 좋았다.


머리가 청아하고 맑았지만, 아이러니하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뇌를 쓰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최근에 수면시간이 부족한 내게 9시간 숙면으로 인간의 삼대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 중 하나가 완벽하게 채워지니 지적쾌락의 욕망이 작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오로지 진짜 내것은 단순한 식욕, 성욕, 수면욕인가?


나의 진짜 고도는 식욕, 성욕, 수면욕인가?



‘모든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쩜 욕망처럼 나의 고도는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난 오늘 어떤 고도를 기다린 거였을까?


내가 오늘 느낀 기분이 고도인가? 고도가 아닌가?



난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나만의 고도를 기다렸지만



고도는 없었다.



그러므로 고도는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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