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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비평

유토피아

by 조지조

유토피아라는 곳이 있을까?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면 처음에는 소설에서 설명하는 유토피아가 이상적인 국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유토피아의 노동, 생활방식, 사회구조, 결혼, 군대, 종교에 관한 설명을 따라 읽다 보면 몇 가지 단어가 어른거린다.


공산주의... 군대.... 전체주의... 혼전순결, 개인의 개성의 부재..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존재할까?




최고의 현자로 추앙받는 플라톤은 모든 사람의 안녕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재화의 완전하고 공평한 분배라고 예견했다.


사유 재산 제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재화는 공평하고 정의롭게 배분될 수 없으며,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한다.



사유재산 제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크게는 감정의 고등동물이며, 욕망의 동물이며, 비교의 동물이자 질투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빌어 책의 말미에 이야기한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운영되는 사회제도는 대중을 관리한다는 미명 아래에서 사적 이익만 추구하려는 부자들의 음모에 불과하며,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속임수와 사기술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인간 본성의 전염병인 ‘탐욕’은 인간들로 하여금 부유함이란 스스로 풍족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갖는 것으로 생각하게 했다. 탐욕이 있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불행과 비교함으로써 그 행복이 더 밝게 빛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함으로써 가난한 자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상기의 비교우위의 우월감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발휘된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사유 재산 제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의 어떤 노력에 대한 대가나 보상에 재화가 주어지지 않으면 노동 동력의 상실을 야기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럼 유토피아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한다.



첫 번째는, 돈(재화)에 대한 사회적 관점의 변화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의 가치를 집단지성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보통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수반해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와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실용서도 좋지만 인류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인문학과 좋은 고전들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초등교육부터 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몽이 아니라 교육이다.


참된 교육은 집단지성을 살찌운다.


단단하게 개개인의 지성이 몸과 마음에 파고들면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숭고한 가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되는 문화를 이룰 수 있다.



두 번째는, 개인의 유토피아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다.


행복(유토피아)이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러 오는 매화꽃향을 맡고 보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



혹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 가슴과 머리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찰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포르셰와 에르메스를 샀던 순간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을 같이 먹고, 배부르고 충만한 마음에 밤 산책을 하며,


가로등에 더 환하게 빛나는 고혹적인 매화꽃을 보고 싱그러운 매화향을 맡으며 재잘대던 그 날밤이었을 것이다.



나만의 행복은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다.



유토피아는 내 마음속에 있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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