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죄의식
단편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꽤나 인간의 관계에서 침묵과 죄의식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헤더는 자기보다 30살이나 더 많은 교수 로버트에게 호감을 느낀다. 괴상한 수식 하나만을 문제로 낸 괴짜 교수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서 시험을 끝낸 유일한 학생이었던 헤더를 인상적으로 느낀 로버트도 학교 근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차를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심지어 로버트의 집 열쇠까지 받아 점점 자주 만나서 내밀한 이야기까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 의대생 콜린에게는 알리지 않은 비밀스러운 만남이 계속된다. 둘이서 처음 집이 아닌 공간인 바에서 콜린을 마주치고, 헤더는 다시는 로버트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콜린과 로버트는 결혼을 하고, 몇 년 후에 헤더는 로버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혼자 조용히 오열한다.
인상적인 문장들을 써본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는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 생각에,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시킬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로버트는 내가 거의 십 년 동안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나는 콜린(남편)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는, 그 사실을 내면화하여 속으로만 감내하고 삭일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그는 아마도 내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을 테고, 내게서 로버트에 감정을 듣는다고 해도 내게 상처 주지 않을 방법만 생각할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좌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우연에 폭격을 맞는 일상의 감정과 선택에 의한 행동들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기억과 추억으로 혼탁에서 현재의 사건과 진실로 선명해진다. 헤더는 오열했다.
죄의식과 죄책감을 세상밖으로 꺼내는 순간 자신의 죄의식은 해소된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침묵은 최선이며,
미래의 감정적 요동에 대처할 미리 준 선물이며,
그리고, 성찰이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