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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모든 장소가 독서실이다.

호캉스, 북캉스, 스터디 카페

by 된다 맘

둘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서도 나는 독서를 즐겼고 두 차례의 수술을 겪으면서도 나는 입원 중에 독서를 즐겼다. 독서가 나를 살렸다. 시간도 잘 가고 잡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에 남은 만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평생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큰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수 천권의 책을 읽고 인생을 역전시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있다. 많지는 않지만 있다.

<지대넓얕>을 쓴 채사장도 있고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의 고명환 작가도 그렇다.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후 책에 파고들었다. 병원이라는 장소는 최대한 우리가 피하고 싶은 장소들 중에 하나다. 아예 안 가고 살 수 있다면 그런 천운이 있겠느냐마는 사람이 태어나는 곳도 병원이고 죽는 곳도 병원이다 보니 관점을 바꾸어 가는 김에 마음 편히 책 읽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기 시간 동안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결과를 기다리기도 초조하니 읽히든 읽히지 않든 물성인 책을 그냥 들고 글자만 읽어 내려가도 순간의 지루함과 불안을 달래주는 도구로 훌륭하다. 이 나이에 인형을 들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그러고 보면 책은 펼치는 순간, 모든 곳이 독서 공간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가끔 티브이에 해외의 모습을 비추면 벤치에서, 공원에서, 계단에서 혹은 버스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 데서나 책을 읽어도 눈치 보는 사람이 없다. 참 편하고도 행복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저런 모습이 낯설다. 나는 항상 가방에 책을 한 권씩 넣어 다닌다. 갑자기 어떤 상황에 어떤 시간 공백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가족들과 매년 바닷가로 여행을 간다. 아직은 어린애들이 있기 때문에 여름에 바닷가를 한두 번 가줘야 그나마 여름을 버틸 수 있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호캉스를 북캉스로 바꾸어 한 번쯤 독서를 즐겨보고 싶었다.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 때문에 혼자서 호캉스를 떠나기는 미안하다. 다 같이 가는 김에 '나'만은 북캉스를 즐기는 중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한 번 더 관점을 바꾸어 본다. 놀다 지친 아이들은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곤히 잠들어 있다. 나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전날 준비해 두었던 커피와 책을 테이블에 올리고 은은한 스탠드를 켠다.

커튼은 그대로 쳐 두어야 한다. 방안의 어둠을 지켜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깨면 잠시 즐기고 있던 북캉스가 너무 빨리 끝나버린다. 최대한 조용히 책장을 넘겨가면서 그렇게 1~2시간 나는 북캉스를 즐겼다. 그 고요한 시간 동안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읽고 호텔에 있는 펜으로 메모까지 했다. 북캉스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참 행복하고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내면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깰 때 나의 호캉스도 막을 내렸다. 어쨌든 나는 북캉스를 경험해 보았다. 멋진 기분이었다.


오전부터 바닷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수영 준비를 했다. 나는 물도 싫어하고 수영은 아예 못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몇 년 돗자리 지킴이를 했다. 평소에 일하는 워킹맘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신랑은 그런 내가 안쓰러운지 매년 그쳐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고 오라고 한다. 그래도 엄마 자격으로 따라왔는데 나 혼자 동떨어져 있기는 싫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평소에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는데 노는 모습이라도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그늘 밑에 돗자리를 깔고 시간을 보내야 할 거면 커피숍이 아니라도 그냥 돗자리 그늘에서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뜨거운 날, 30도가 훌쩍 웃도는 날씨에 책을 읽겠다고? 그렇다. 읽을 수 있다. 문제없다. 20대에 나는 찜질방을 종종 가곤 했는데 그 뜨거운 찜질방 안에서도 책을 읽었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 책을 펼치면 한참 후에는 낱장으로 떨어지기까지 한다. 고온의 찜질방에서도 읽었는데 탁 트인 바닷가는 너무 환상적이다.

그렇게 신랑과 아이들은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는 모래 위에서 독서 놀이를 했다. 책에 줄까지 그러가면서 말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이 알게 모르게 내면을 다져준다.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면 뜻하지 않은 장소가 모두 독서 공간으로 바뀌는 미라클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그 경험만큼 나의 내면도 강해지고 독서의 힘도 강해진다.

​가장 효율적인 장소로는 스터디 카페도 추천하고 싶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장소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동네는 100시간에 약 10만 원인데 연말에는 9만 원 행사도 종종 한다. 그러면 무조건 100시간을 끊어둔다. 독서행 티켓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추운 날은 따뜻하고 더운 날은 시원하다.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도 마음껏 마시며 카페인 충전도 하고 간단한 음료와 간식거리까지 준비되어 있다.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라서 최대한 집중해서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좀 더 긴장감 있게 집중하고 싶다면 2시간 권을 끊으면 된다. 3000원 정도 하니깐 이것도 괜찮다. 요즘 3000원에 장소도 제공해 주고 커피까지 제공해 주는 곳은 진짜 찾기 힘들다. 굉장히 효율적이다. 몰입도도 강하고 3000원의 가치를 충분히 한다. 내가 스터디 카페로 여러 아줌마들을 유인했다. 동네 아줌마들끼리 만나서 수다를 떨고 비싼 커피를 마실 시간에 험담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키울 수 있다.

엄마들은 자녀가 있다면 함께 스터디 카페에 가는 것을 추천드린다. 절대 감시하기 위함이 아니니 어디까지나 자녀가 동의해야 한다. 나도 첫째 딸과 함께 다녀봤는데 참 좋다. 각자 자신의 공부를 하면 된다. 아이는 주로 영어, 수학 공부를 하고 나는 책을 읽었다. 대화 없는 환상적인 데이트 시간이었다. 2시간으로 머리를 채우고 나와서는 떡볶이로 배를 채운다. 스테이크 못지않다.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건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독서 공간도 아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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