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힘들다면 책 읽을 절호의 기회다!
책을 읽는 행위와 글을 쓰는 행위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에는 오히려 밖으로 나가서 즐거움을 찾게 되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시간을 갖지는 않는다. 친구들을 만나서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즐거울 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때, 누군가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라도 하고 싶다.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우울해 미치겠는데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지는 않다. 친구들 또한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힘들 때가 바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잘 잡아야 우울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힘들 때 펼쳐 보는 책은 어떤 문장이라도 나에게 위로가 되고 나의 감정에 공감을 해준다.
굳이 옷을 차려입고 불편한 마음으로 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 책만 펼 수 있는 시간과 용기가 있다면 책은 나만을 위한 전문 상담가가 되어 주기도 하고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네는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시중에 출판된 많은 책들을 읽어보면 너무 즐거워서, 현실에 너무 만족스러워서 독서를 시작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읽어 본 수천 권의 책들 중에서 그런 작가는 전혀 없었다.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기억하는가?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직장 생활이 불만족스러워서, 육아로 번아웃이 와서,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이 들어서 등등의 모두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저마다 다양하고도 합당한 이유들이 있다. 너무 행복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경우를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다.
힘들 때 읽는 책은 앞으로 나의 성장과 발전에도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나 역시 힘든 가정환경 때문에 일종의 도피처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글씨를 보기 시작했다.
전쟁 같은 싸움터를 애써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을 막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귀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몇 년이 흐르고 십수 년이 흐르는 과정에서 그제야 책의 내용이 천천히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어오고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책이 도피의 수단이었다. 힘들고 불안한 상황에서 읽게 되는 책은 아무래도 쉽게 감성을 자극하게 돼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각자 자신만의 힘든 경험을 극복하고 책을 썼기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독자 역시 공감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독서는 선순환이다. 내가 힘들어서 읽은 책으로 위로를 받고 그 위로에 용기를 얻어 결국 책까지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꼭 이 선순환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웃을 일만 있다면 좋겠지만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삶'이란 살아서 나아감이다. 한 번씩 찾아오는 역경에 맞서서 견뎌낼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도 독서를 통해서 가능하다.
살면서 한 번씩 혹은 몇 번씩 찾아오는 역경을 신이 아닌 이상 피해 갈 수는 없다. 우리가 이 역경을 어떻게 견뎌낼지 우리 내부의 신도 궁금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 번씩은 역경을 슬며시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
경험상 독서를 통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내가 해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내면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나의 내면이 강해지는 순간, 나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고난도 넘길 수 있다.
개인마다 느끼는 강도가 다를 수 있듯이 극복의 시간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해내게 된다. 근거 없는 용기도 생기게 된다. 카네기 대학 랜디 포시 교수도 다음과 같이 역경을 말한다.
"역경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역경은 우리를 몰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충분히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역경은 그만하라고 말합니다. 역경은 그런 사람들을 단념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오죽하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이 출판되었을까.
몇 년 전에 블로그에서 어떤 분이 힘들 때마다 떠오른다는 배우 박신영의 영상을 포스팅하셨다. 그는 러시아 유학 1년 차 가장 힘들었던 시절, "선생님,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그때 대답 대신 시집을 주시면서 공부를 해오라고 하셨다.
그 시의 내용은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였다. 인생은 행복하고 힘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오히려 즐거울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았던 것 같고 힘든 시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도 힘이 들 때는 결국 책에서 위로를 얻었고 해답을 얻었고 깨달음을 얻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역경에 맞서 고단함을 견뎌낼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도 지혜도 결국은 독서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미 나보다 훨씬 더 앞서서 힘든 일을 겪고도 살아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미 나보다 더 큰 빚을 지고도 살아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한 명, 한 명을 모두 다 방문해서 위로를 해 줄 수 없으니 책으로 출판을 해 주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용기를 얻어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다양한 책들로 영역을 넓혀 나갈 수가 있다. 손에서 책을 놓지 말고 책에는 답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
책에서 우리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그 답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는 있다. 그렇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훔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 게 더 어려워진다.
현재 고민을 안고 있거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지금이 바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누구에게나 역경이라는 가면을 쓰고 기회는 찾아오는 법이다.
그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