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마음의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 법

by 라온제나

“엄마, 난 설거지하는 게 제일 귀찮더라. 조금 이따 하면 안 될까?”

투정 섞인 내 말에 엄마는 말없이 고무장갑을 끼셨다.

평소엔 무엇이든 “괜찮다”며 넉넉히 받아주시던 엄마였지만, 생활의 태도가 흐트러지는 순간만큼은 스승처럼 엄격해지곤 하셨다.


“설거지는 단순히 그릇을 닦는 게 아니야. 더러운 걸 바로 씻어내는 일이지. 하나를 게을리하면 쓰레기가 하나 쌓이고, 이내 두 개가 쌓인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무거워서 버리지도 못해. 사람 생각도 마찬가지란다.”

엄마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엄마에게 게으름이란 단순히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었다. 제때 비워내지 못한 마음의 찌꺼기를 방치하는 일이었다.

“짜증도, 미움도, 시기와 질투도 제때 치우지 않으면 금세 마음속에 쌓여버려. 그렇게 마음이 지저분해지면 결국 감사를 잃고 원망만 남게 되는 거야. 생활의 한 귀퉁이가 게을러지면, 그다음은 금방 흐트러진단다. 그러니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치우렴.”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나간 집. 대충 쌓아두고 살아도 될 법한데도, 엄마는 결코 자신을 방치하지 않으신다. 부지런함은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라며, 오늘도 몸을 움직이신다. 예전엔 그런 말이 그저 깐깐한 잔소리처럼 들렸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불쑥 연락을 해왔다.

마음이 답답하다며 잠시 찾아와도 되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어질러진 집안과 무거운 마음을 핑계 삼아 “다음에요”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습관이 몸에 밴 지금의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지금 바로 오세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음을 풀어놓던 그분은 돌아가는 길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게으름을 미루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신 덕분에, 나는 누군가에게 언제든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맞이할 수 있는 정갈한 공간은,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세 자녀의 도시락을 싸고, 장사를 하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단 한 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꼿꼿한 부지런함 뒤에 얼마나 많은 새벽이 쌓여 있었을지, 이제야 비로소 짐작해 본다.


엄마가 닦아낸 것은 그릇의 기름때만이 아니었다.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원망과 불평이 고이지 않도록, 매일 마음의 설거지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오늘도 우리 집 문을 활짝 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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