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이어 반질거리는 삶
요즘은 세상이 참 좋아졌다.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건 기본이고, 알아서 물걸레질까지 해주는 신기한 물건들이 넘쳐난다. 혼자 사시는 엄마의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어
“엄마, 물걸레 청소기 하나 사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엄마는 손사래를 치신다.
“아니다, 이 작은 집 하나 내가 닦으면 되지. 뭐 하러 돈을 쓰니.”
여든넷. 무릎이 예전 같지 않으실 텐데도 엄마의 집은 여전히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다. 어항 유리벽도, 창틀 구석도, 매일 발이 닿는 신발장 바닥까지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 부지런함의 끝이 문득 궁금해져 여쭈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닦고 치우셔요?”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도 우리 엄마한테 배웠지. 너희 외할머니는 가마솥도 반질, 부엌 바닥도 반질, 그릇이랑 이부자리까지 늘 반질반질하게 닦아두셨단다.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나도 배운 대로 하는 거지. 너희도 삶이 구김 없이 반질반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단순히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선 세대에게서 물려받은 삶을 가꾸는 방식이자, 자식들의 앞날을 향해 조용히 건네는 축복이었다.
사실 나는 엄마나 외할머니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 편리한 기계에 기대어 대충 살아가던 나는, 엄마의 그 ‘반질거리는 삶’ 앞에서 문득 부끄러워졌다.
엄마가 닦아낸 것은 먼지가 아니라, 삶에 스며드는 어수선함과 나태함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부지런을 떨어본다. 찬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묵은 그릇을 꺼내 씻고, 햇살 좋은 베란다에 이불을 넌다. 흙먼지가 쌓인 신발장 앞을 닦아내며, 흐트러진 내 마음의 자리도 함께 가지런히 정돈해 본다.
예전 어른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깨끗한 습관으로 삶의 품격을 지켜냈듯, 나 또한 오늘을 정성껏 가꿔보려 한다. 이 부지런함이 언젠가 내 자녀에게도 ‘반질반질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내 삶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이 손길이,
엄마가 내게 건네준 가장
따뜻한 유산임을
오늘도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