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는 왠지 다른 아침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 눈을 떴을 때 남편은 이미 출근해 없고, 13개월이 지난 딸 지우는 여전히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아침 풍경은 같았지만 단이의 마음은 좀처럼 평소와 같지 않았다.
전 날 회사에 복직계를 제출한 뒤로 엄습해 오는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걱정, 복잡 미묘한 생각과 감정들이 단이를 괴롭혔다. '아이의 정서를 위해 최소 세 돌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고 하던데 겨우 돌 지난 딸을 두고 복직을 하는 게 맞나? 최대한으로 휴직을 쓴다면 동기들보다 승진에서 밀리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될 텐데 일단 복직해? 과연 내가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론은 복직을 하기로 했다.
남들 보면 그냥저냥 사는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는데 막상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세상은 만만치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우가 태어나고부터 '단이'의 이름은 '지우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호칭이 낯설고 영 쑥스럽기도 했지만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한편으론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게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들이 불러주는 그 호칭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어쩌면 단이 안의 정체성이 '지우 엄마'라는 호칭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복직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복직계를 제출 한 이후 단이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밀린 집안일,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보고 싶었던 사람들, 미루고 미뤘던 일들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일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땐 휴직만 하면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 동안 밀린 집안일이며, 배우고 싶었던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여유 있게 다 할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지우가 신생아일 땐 밤낮이 바뀌어 수면 부족으로 일상이 망가졌고, 수면 패턴이 생긴 이후에는 이유식을 만드느라 바빴다. 아무리 유기농 시제품이 다양하고 잘 나온다 해도 내 아이가 먹을 음식만큼은 직접 만들어 주고픈 게 단이의 마음이었다. 이유식을 만들 때 대량으로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 놓고 먹일 때마다 데워 먹이는 것도 싫어 매 끼니마다 새로운 이유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단이의 시간은 지우의 성장과 반비례하여 점점 줄었다. 기어 다니며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니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고, 돌잔치를 앞둔 보름 전에는 걸음마를 떼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 단이를 보며 남편은 유난스럽다고 했지만 아기를 처음 키워보는 단이에겐 그래야 되는 일인 것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키우는데 유난스럽게 여기는 남편이 얄미웠다. 정작 딸바보인 본인이 더 유난을 떨 때가 많다는 건 모르는가 보다.
단이는 곤히 잠들어있는 지우의 얼굴을 쳐다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복직하지 말고 내가 좀 더 키울까?’, ‘아니야, 전문가인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잘 돌봐 주실 거야’, ‘지우가 정서적으로 결핍을 느끼면 어쩌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니 지우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면 돼’
또 두 개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양쪽에서 단이를 흔들어댄다. 그만 고민하고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깡~ 언제 올 거야? 내가 맛집이랑 멋집 다 검색해 놨어!”
오랜만에 듣는 유진이 부르는 ‘깡~’ 소리에 단이는 20대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단이보다 한 살 많은 유진은 단이가 신입생 때 함께 방을 쓴 기숙사 룸메이트다. 유진은 단이의 이름 대신 성을 된소리로 부르곤 했다. 미술을 전공한 유진은 고향인 춘천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과 미취학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 지도를 하고 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아기가 들어서질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결혼은 나중에 했어도 아이를 먼저 갖게 된 단이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선뜻 연락을 잘하지 않았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사람 중 한 명이니 복직 전에는 만나기로 했다.
“검색은 무슨~ 그래봤자 닭갈비랑 소양댐 근처에 있는 카페 아냐??? 근데 오랜만에 닭갈비가 먹고 싶긴 하다. 지우 깰 때 됐는데 얼른 등원시키고 갈게~” 통화를 마치고 나니 닭갈비보다 고기를 먹고 난 뒤 볶아주는 밥이 더 먹고 싶어졌다. 단이는 아직도 꿈나라에 있는 지우의 옷을 갈아입히고 가제손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묻혀 얼굴을 닦아주고 로션을 바른 뒤 아기띠에 안는다. 앞으로 복직하면 늦어도 8시에는 등원을 시켜야 하는데 미리 적응을 시켜야 한다며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공동 현관을 나서자 무성한 나뭇잎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 벚나무 가로수가 눈에 띄었다. 봄에 벚꽃이 만개했을 때만 눈길을 주었는데 어느새 가지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잎이 풍성해졌다. 단이는 집 앞 공원에 있는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계절을 실감하고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니 날짜와 요일은 무의미한 것 같아 달력을 보지 않은지 오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어머, 오늘은 웬일로 평소보다 일찍 오셨어요? 일이 있으신가 봐요?”
단이의 친정엄마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토끼반 선생님이 문을 열며 두 사람을 반겨준다. 항상 웃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장착한 지우네 반 담임 선생님은 천상 어린이집 교사다.
“아, 네~ 어제 복직계 냈거든요. 아직 정확한 날짜는 모르는 데 하반기 정기인사에 발령 난다니 한 달 정도 남아서 조금씩 적응시키려고요. 복직하면 늦어도 8시에는 등원시켜야 하거든요.”
“잘 됐네요. 지우 어머니 복직하시는군요. 축하해요. 여전히 경력단절되는 여성들이 많은데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지우는 저희가 더 잘 돌볼게요~”
말도 예쁘게 하시는 토끼반 선생님의 하얀 피부가 오늘따라 더욱 빛나 보였다.
그 사이 잠에서 깬 지우는 울음을 터뜨렸으나 능숙한 토끼반 선생님의 안아주기 신공으로 단이는 마음 편히 어린이집을 돌아설 수 있었다.
서둘러 집에 도착한 단이는 오랜만에 화장대에 앉아 멋을 냈다. 먼지가 쌓여가는 화장품들의 뚜껑을 열어 베이스를 바르고 색조화장까지 최대한 신경을 썼다. 유진과는 단이의 결혼식 이후 처음 만나는지라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지막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 유진에게 아기를 키우는 아줌마의 피곤이 역력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우가 손으로 잡아 뜯을까 봐 빼놓은 목걸이를 다시 걸고, 지우 반찬을 만들 때 걸리적거려 보관해 두었던 결혼반지도 다시 꺼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차던 팔찌와 귀걸이도 장식함에서 나와 모처럼 세상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언니, 나 출발했어~ 차 안 밀리면 1시간이면 갈 거야.”
휴대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미리 다운로드한 최신가요를 들으며 단이는 시동을 걸었다. 일주일에 한 번 문화센터 수업이 있는 날이나 지우의 병원에 갈 때만 하던 운전인데 오랜만에 한 화장처럼 장거리 운전도 얼마만인가.
고속도로를 달리며 전면창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단이의 들뜬 마음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있다. 단이는 첫 번째 밀린 숙제를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