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by 온리원

복직 D-day


다행히 단이는 집에서 가까운 구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희망보직제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던 인사 담당자는 복직 일주일 전 전화를 걸어와 어린 자녀가 있는 복직자들을 최대한 배려했다며 인심 쓰듯 발령부서를 알려 주었다. 승진하기 위한 근평 관리를 당장은 할 필요가 없으니 집에서 가까운 곳이면 어느 부서든 상관이 없었다. 본인의 업무였겠지만 따로 연락을 준 직원에게 단이도 예의상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인연으로 만날지 모르는 게 사람일이니 적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기에.


15개월의 긴 휴식, (사실 휴식은 아니었다. 신생아를 키운다는 건 난생처음 겪어보는 매운맛이었으니.) 공백을 마친 복직 첫날의 긴장감은 신규자 발령을 받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입어 본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가 몸에 꽉 끼었다. 출산 후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 복직을 앞두고 급하게 다이어트를 했지만 한번 늘어난 뱃살은 아가씨 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과 처음으로 겪어야 하는 워킹맘이란 삶에 잔뜩 마음이 긴장되었는데 꽉 낀 옷 때문에 몸도 긴장되었다.


늘 오버핏에 편한 티셔츠만 입다 오랜만에 차려입은 거울 속의 단정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워킹맘, 별 거 아냐. 남들도 다 하는데 뭐, 나도 당연히 잘할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사실 단이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의 마음이 크다. 해 보지 않고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지만 왠지 워킹맘의 일상은 육아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 것 같았다. 하지만 육아만 새롭게 할 때보다는 범위가 크고 넓은 다양한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엄마의 복직을 지우도 눈치챈 것일까?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란 것을 직감한 것인지평소보다 더 잠투정을 심하게 부리며 운다. 복직 첫날부터 지각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준비한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지우의 어린이집 등원 준비시간은 길어졌다. 생리현상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란 걸 알지만 왜 하필, 복직 첫날부터, 불편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 준비를 다 마치고 나가려 할 때 지우는 응가를 한 것일까! 지우의 대변이 마치 단이에게는 앞으로 펼쳐질 고단한 워킹맘의 삶에 대한 복선인 것 같아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두려움처럼 느껴졌다.


쿰쿰한 냄새를 모른 체하고 그냥 등원시키기엔 양심이 허락 질 않아 기껏 채운 아기띠를 다시 풀러 지우의 바지를 벗긴다. 워킹맘의 시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니 예측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우가 잠 때문이 아니라 응가 때문에 투정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미안해졌다. 마음을 몰라준 것 같아서.




구청은 단이의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이동하고 주차까지 해도 15분이면 충분했다.

출근 전 지우의 응가라는 이슈 덕분에 단이의 긴장감은 사라졌다. 그저 정신이 없었을 뿐.

신규 임용이 아닌 복직이라 발령받은 부서로 바로 향했는데 낯선 사무실로의 출근이 어색하기만 했다. 아직 어느 팀으로 배치될지 몰라 주무팀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서자 파티션 너머의 무뚝뚝해 보이는 안경 쓴 남자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오늘자로 복직하는 강단이라고 합니다."

출근 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주문을 외듯 용기 있는 말을 한 덕분에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 강단이 씨? 반가워요. 복직 축하하고..... 전보자들은 다 왔는데 신규직원은 구청장실에서 인사하고 올 거라..... 잠깐만 저기 앉아서 기다릴래요?"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주무팀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저음이었다.

회의테이블에는 전보자라는 두 명의 직원이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를 마시고 있었고, 단이는 그들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사무실이 조용해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은 건지, 쑥스러워 그런 건지 둘은 가볍게 목례로만 인사를 주었다.


주무팀의 막내로 보이는 여직원이 시원한 얼음을 띄운 녹차를 가져다주었다. 종이컵을 들고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세련된 골드 미스 같은 여직원이 한눈에 봐도 신규 같은 남직원과 함께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회의테이블에 앉으라는 눈짓을 하고 주무 팀장에게 사인을 보냈다. 주무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님' 하고 부르자 잠시 후 보이지 않았던 남자 머리통 하나가 파티션 위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박 과장이다.


박 과장은 전형적인 간부 공무원처럼 생겼다. 무채색 계열의 옷들은 왠지 모르게 칙칙하게 느껴졌고 고지식해 보이는 인상도 한몫을 했다. 정리되지 않은 헤어와 불룩 나온 배는 자기 관리라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박 과장이 자연스럽게 회의테이블 가운데에 앉자 주무팀장은 박 과장의 우측에 앉았다. 인사발령 첫날의 어색하고 낯선 풍경이 익숙한 듯 주무팀장은 과장부터 팀장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주무팀장 옆자리에 앉은 골드 미스 같은 여직원은 정연실, 단이의 팀장이란다.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센 언니 느낌이지만 똑 부러지는 성격일 것 같아 단이는 마음에 들었다.


"다들 반가워요. 두 사람은 승진해서 이동한 거니 금방 적응할 것이고, 강단이 씨는 1년 쉬었나? 오랜만에 출근해서 잘 모르겠는 건 후배라도 창피해하지 말고 물어보면서 빨리 적응하고, 신규 직원은 이름이.......?"

"네, 유상훈입니다."

"상훈씨는 6개월 시보 기간이니 정규임용에 불리한 언행 조심하고......"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과장님의 환영 인사는 일방적이었다. 공무원 조직문화도 변해야 한다며 소통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단이씨는 그럼 지금 아기가 몇 개월이지?"

"13개월 좀 넘었습니다."

"딸인가? 아들?"

"딸이에요."

신상에 관한 질문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친분의 요소로도 작용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예의상, 분위기상 꺼내기도 한다.


박 과장은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본 뒤 주무팀장에게 직원 배치는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로 간다.

승진하고 내려왔다는 두 명은 주무팀으로, 단이와 신규직원인 상훈은 정팀장의 팀으로 배치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워킹맘으로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출근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엔 불안과 두려움, 긴장이 남아있다.

앞으로 펼쳐질 전쟁의 서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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