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자의 탄생

by 온리원



“말자야~!!”

카페에 미리 도착해 있던 경순이 출입문에 들어서는 인자를 향해 웃으며 손짓을 한다.

“야, 아직도 말자가 뭐냐? 유치하게~"

인자는 진심을 담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경순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조용하게 말한다.

'김지안 이라고~~~!!!'

그래도 오랜 만에 만난 자리인데 너무 정색하면 어색할까 싶어 살짝 기분을 풀어 자리에 앉으며 다시 한번 이름을 강조해 말한다.

"이 언니 이름은 김지안이라고~~!! 몇 번을 말하냐~~ 꼭 기억해라잉~ 근데 정윤인 아직 안 왔어?"

인자가 촌스러운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경순은 '말자'가 친근하고 좋다며 항상 별명을 불렀다. 경순도 예쁜 이름으로 개명을 하네마네 해 놓고는 막상 인자가 먼저 개명 신청을 하니 약간 샘이 나 일부러 골리려는것처럼 느껴졌다. 경순도 좀 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고는 싶었지만 막상 개명을 하려고 보니 삼십년 넘게 산 세월의 일부를 지우게 되는 것 같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인자와 경순은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 초,중,고를 함께 다닌 막역한 친구 사이다.

중학교 2학년. 새로 부임해 오신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 영어 과목을 맡았는데, 수업 시간에 이해를 돕는다며 예시를 들 때 사용한 가상의 인물 이름이 ‘말자’였다. 이름에 ‘자’가 들어간 인자의 별명이 ‘말자’로 탄생한 계기가 된 것이다. 남녀합반이었던 탓에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인자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 적이 없다. 가뜩이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이름인데 말자란 별명이 싫었던 인자가 개명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때이다.


“야, 난 아직도 양아치가 가르쳤던 영어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 말자 knows how to cook, 말자는 요리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치, 네가 어려서부터 요리는 잘 했지~ 네 덕분에 중학교 때 영어는 재밌게 공부 했던 것 같아. 호호호~”

양아치는 성이 양씨라 붙여진 영어샘의 별명이었다. 영어샘이 인자의 사정을 알고 예시를 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누구보다 인자네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경순은 그가 수업시간에 사용한 예시들의 상황이 꼭 인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대신 K장녀로 집안일을 많이 도왔던 인자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동생들 저녁을 챙겨줘야 한다며 집에 갔던게 경순의 입장에선 꽤나 인상적이었던 일이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면 빠지지 않고 말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다.


인자는 이름에 들어간 ‘자’자가 촌스럽게 느껴져 싫었다. 예의와 태도를 중시했던 보수적인 아버지는 첫째 딸인 인자가 어질고 자애로운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어질인(仁)에 사랑자(慈)를 써 ‘인자’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90년대만해도 '유진', '민지', '지은' 같은 예쁜 이름도 많은데 40년대 창씨개명의 일본식 이름같은 ‘자’를 쓰나 싶어 보수적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 그렇다고 '아들자(子)'가 아닌 '사랑자(慈)'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뜻풀이를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인자의 개명에 대한 욕구는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있었지만 새로운 이름으로 모든 법적 서류를 변경해야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아 미루기만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법적 보호자로서 부모의 이름을 기입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생기면서 실행을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인자 스스로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엄마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진 않을까 하는 앞선 생각에 개명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가정법원에 개명 신청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작명소도 있어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절차가 참 간편하다. 개명 신청을 하고 친한 친구들에게 알리니 경순의 반응은 중학교 시절 짓궂은 남자 애들처럼 장난스러웠다. 개명을 해도 자기는 인자라고 부를거라는데 '말자'라고 놀리고 싶어 괜히 그러는 것 같았다.


경순과 인자가 중학교 학창 시절의 추억을 한창 나눌 무렵 정윤이 들어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정윤은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오자마자 “나 왔다, 나는 시원한 아아” 짧게 말하고는 털썩 자리에 앉았다.

“뭔 일 있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경순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기로에 서있다. 나오기 전에 남편이랑 대판하고 왔어. 어휴~ 정말 짜증나!”

“왜, 왜??" 인자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정윤에게 이유를 재촉했다.

"아니, 나 오늘 분명 너희들 만난다고 했거든? 근데 이 놈의 인간이 골프 약속을 잡은거야~ 내가 애들데리고 키카 가라고 예약까지 해 뒀구만! 거래처 사람들이랑 라운딩 하기로 한거라 취소하기 어렵다며 언제 자기한테 오늘 약속 있다고 말했냐는거야~ 자기가 제대로 안 들어놓고는~"

"근데 그게 일하는거랑 뭔 상관이래?? 남편이랑 싸워놓고 일을 계속 하냐, 말아야 하냐니??"

"어제 우리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공개수업 했는데 그거 준비하느라 거의 2주간 야근도 모잘라 집에 일거리 싸와서 했거든. 그래서 남편이 애들 케어 다 했는데 오늘도 애들 안 보고 나간다고 뭐라고 하잖아. 이건 두 달 전에 한 약속인데 말야~ 자기가 골프 치러 나가는거는 접대하는거라 근무의 연장선이고 투자하는 거래. 자기는 영업하는 만큼 인센티브가 주어지는데, 내가 하는 일은 야근을 하든 집에 싸 갖고 와서 하든 월급은 똑같지 않냐며 은근 무시하잖아. 언제는 애들 낳으면 잘 키울것 같다고 어린이집 교사가 좋다고 하더니....."

눈치껏 빠른 주문을 하고 커피를 가져온 경순은 정윤에게 먼저 유리잔을 건냈다.

"내 새끼는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새끼 돌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일하는 나는 뭐 좋냐? 자기가 안정적인 직장에만 다녀도 내가 워킹맘은 안 했을텐데 그런 생각은 안하지~"

정윤의 목소리엔 화가 묻어 있었지만 이제 막 세 돌 지난 어린 쌍둥이가 생각났는지 눈가는 촉촉해졌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정윤은 자기가 워킹맘이 될 줄은 몰랐다고 늘 말한다.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봐 온 맞벌이 부부들의 전전긍긍하던 모습들이 내가 되긴 싫었기 때문이다. 전업맘을 하면서 무조건 세 돌까지는 내가 키우겠다며 다짐했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남편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고 영업맨이 되면서 소득이 불안정해지자 어쩔수 없이 정윤이 워킹맘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


셋 중 가장 먼저 결혼 해 일찍 아이를 키우게 된 경순이 위로인지 모를 위로같은 말을 꺼낸다.

"내가 결혼생활 십년 넘게 해 보니 남편이나 중학생 아들이나 자기밖에 생각 못하는거는 똑같더라. 남자들이 그래요~ 그래도 넌 딸이 둘이니깐 쌍둥이 조금만 더 크면 좀 나을거야. 이제 세 돌 지났지? 그럼 말귀도 알아듣고 대화도 돼고 하니 좀 수월하겠네~ 좀만 버텨. 좋은 날 올거야~"


워킹맘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세 사람은 직장과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커피잔이 비어 진 줄도 모르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봐온 친구들이기에 누구보다도 공감과 이해를 잘 해 준다. 별명을 부르고 놀려도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편한 친구들은 경순과 정윤밖에 없다고 생각한 인자는 새삼 이 모임에 소중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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