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3개월

by 온리원

10월이 되자 바람은 한결 부드럽고 서늘해졌다. 여름의 뜨거운 기운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가을이 살며시 세상을 감싸 안았다. 하늘은 맑고 높은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나무들은 노란빛과 붉은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한 장씩 잎을 떨구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마치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를 닮았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오후의 햇살은 따스하지만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하루가 저물수록 공기에는 가을 특유의 차분함과 쓸쓸함이 스며들었다. 들판엔 은은한 국화 향기가 피어오르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들은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가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없이 찾아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그리움과 함께 스며들었다.


단이는 서둘러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친 몸으로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평소라면 반갑게 맞아주는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 이상했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지우는 혼자 남아 있었는지 문 옆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 안을 뒤적이며 놀고 있었다.

"지우야…" 단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지우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엄마!" 지우의 작은 손이 단이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그 순간, 뒤에서 당직 선생님이 다가왔다.

"아, 단이 어머님... 죄송해요. 청소 중이라 오신 지도 몰랐네요. 퇴근 시간이 늦으시다 보니 지우가 조금 기다렸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하원해서…"

선생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단이도 무안해졌다. 쓰레기통을 뒤적이던 지우의 모습에 사실 화가 날 뻔했지만, 그보다 더 죄스러운 마음이 커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우가 하원을 해야 당직 선생님도 퇴근을 하실 테고,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로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있는 워킹맘일 테니 말이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늦었어요…" 단이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지우를 데리고 조용히 어린이집을 나섰다.


지우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단이의 마음은 복잡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일찍 데리러 오지 못해서 아이가 저렇게 방치된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직장도 가정도 다 놓치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책이 들이쳤다.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단이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쌓였던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다.

"오늘… 지우 데리러 갔는데 혼자 있더라. 쓰레기통을 뒤적이고 놀고 있는데 하아...... 선생님은 청소하느라 그 상황을 못 보셔서 나도, 선생님도 서로 당황하고, 지우도 많이 기다렸어. 정말 미안하고 속상하네."

하지만 정훈의 대답은 그녀가 예상했던 위로가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내가 항상 얘기했잖아. 너무 늦게 데리러 가는 거 안 좋다고. 어린이집에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니야?"

단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고백이 남편의 비난으로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화가 났다. 지우의 늦은 하원이 어린이집에 부담을 준다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인 건 알지만 자신의 입장보다 어린이집을 먼저 생각해 주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저 속상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는데 말이다.

"나도 알아. 나도 미안한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일을 줄이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이렇게 애까지 힘들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남편의 냉정한 말에 단이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위로받고 싶었지만 오히려 비난만 받고 있으니, 일과 가정 사이에서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흐르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속으로 수없이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나는 왜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할까? 다른 워킹맘들도 다 마찬가지일까?'


단이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계는 이미 밤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서류 더미가 그녀의 책상을 가득 메웠고, 시에서 요청한 자료 제출 기한은 내일 아침이었다. 복직한 지 3개월이 지나, 겨우 업무에 익숙해졌지만 이제는 눈앞에 산적한 일들이 계속 늘어만 갔다. 책임감이 강한 그녀는 야근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휴대폰이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편이었다.

[오늘도 야근이야? 지우랑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와?]

단이는 답장을 쓰려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정훈은 IT 회사에서 근무하지만, 공무원 조직에서 일하는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특히 '야근'이라는 단어에 대해선 항상 부정적이었다. 단이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답장을 보냈다.

[시에서 자료 요청이 왔는데 내일 아침까지 제출하래.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지우 먼저 재워~]

곧바로 남편의 답장이 왔다.

[계속 이러면 곤란해. 나도 요새 바쁘단 말이야. 그리고 지우가 엄마만 찾잖아~]

정훈의 불만 섞인 말에 단이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던 남편의 성격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갈등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가정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단이는 공무원의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는 점점 산더미처럼 쌓였다. 단이는 빠르게 자료를 정리하려고 노력했지만, 머릿속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도, 가정도 양쪽에서 밀려오는 압박감에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 정훈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지우는 잠들어 있었다.

단이는 조용히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많이 늦었네." 정훈은 TV를 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진짜로. 오늘 일이 너무 많았어." 단이는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키며 말했다.

"도대체 공무원이 야근할 일이 뭐가 있어? 자기넨 육아시간이다, 시간 선택제다, 복지 잘 되어 있잖아? 그런 거 다 챙기면서 좀 요령 있게 일하면 안 돼? 지우가 엄마만 찾으니깐 나도 힘들어."

단이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훈의 말에 화가 났지만 싸울 기운이 없어 그만두었다. 그도 자신의 입장에서 힘들겠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 역시 버릴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일하고 있기에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의 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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