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과 휴직

by 온리원

인자는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공무원 생활 14년 차. 7급에서 6급으로의 승진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그녀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며칠 전, 셋째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쁨과 함께 찾아온 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 상태와 마주 앉은 거실. 테이블 위에는 저녁식사로 남은 찌개 그릇이 식어가고 있었다.

"어떡할 거야?" 상태가 조심스레 물었다. 입사 동기이자 직장 동료인 그는 이미 6급으로 승진한 지 1년이 된 상황이었다. "근평 관리가 중요한 시기인데..... 그래도...... 휴직은 해야겠지?"

인자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근평 관리를 위해 시로 이동을 하는 게 유리하단 걸.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음 정기 인사에는 꼭 옮겨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예정에도 없던 셋째 임신이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얄 지 모르겠어. 민서랑 민찬이 때처럼 1년은 당연히 내가 케어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육아휴직 들어가면 승진은 미뤄질 테고, 복직해도 따라잡기 힘들 것 같고....."

인자는 먼저 승진해 자리 잡은 상태가 대신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제안해 주길 내심 기대했다.


상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박 과장은 뭐라고 해?"

인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박 과장을 떠 올리려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박 과장은 퇴직을 앞두고 있어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있을까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인자는 자신의 셋째 임신 소식을 박 과장이 달가워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며칠 전, 그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인자 씨,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박 과장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셋째라니... 축하할 일인 건 맞는데, 지금 상황이 이게 맞나 싶어."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인자는 담담히 대답했지만, 박 과장의 말이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6급 승진이 걸려 있는 중요한 시기야. 인자 씨는 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잖아. 그런데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까지 쓰면 팀에 큰 공백이 생길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건지 박 과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인자는 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겉으로는 인자의 승진을 염려해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업무 공백과 결원으로 인한 본인의 불편이 걱정인 것이다. 그러나 인자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과장님, 저도 당연히 승진하고 싶죠. 하지만 셋째 아이의 출산은 계획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저에게 승진이 중요하지만, 아이도 중요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팀에 부담을 주는 건..." 박 과장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나도 이해해, 인자 씨. 하지만 현실은 냉정해. 인자 씨가 육아휴직을 쓰면, 승진에 영향을 받을 거라는 건 다들 알잖아."


승진.

박 과장은 자신의 속내는 숨기고 인자에겐 아킬레스건과 같은 승진 이야기로만 휴직을 회유하고 있다. 인자는 그 말이 뼈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녀는 깊은숨을 내쉬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요."

박 과장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당장 이 팀에서 일을 맡을 사람도 없고, 공백이 크면 크면 조직 전체가 흔들려."


'언제부터 조직을 그렇게 생각했다고......'

인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고민할 때마다, 일과 가정 사이의 무게는 너무나도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그 무게는 다시 평형을 찾았다. 이건 누가 대신 결정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자는 팀 회의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셋째 아이 임신 소식 이후,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육아휴직을 내고 싶지만, 승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동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그때, 정 팀장이 다가왔다. 삼 남매를 키우며 팀장 자리에 오른 그녀는 인자에게 롤모델 같은 존재였다. 정 팀장은 인자가 고민하는 것을 눈치챈 듯, 부드러운 미소로 말을 건넸다.

"인자 씨, 잠깐 시간 괜찮아?"

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팀장님."

정 팀장은 회의실로 인자를 이끌었다. 문을 닫고 둘만의 공간이 되자, 인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셋째 소식 들었어. 축하해. 요새 고민이 많지? "

인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런데 축하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승진도 앞두고 있고, 육아휴직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기만 해요."


정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내가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지. 나도 그랬거든. 셋째 임신했을 때, 인자 씨랑 상황이 비슷했어. 승진도 중요한 시기였고, 팀에서도 내 자리가 크다고 생각하니까 더 부담스러웠지."

인자는 정 팀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팀장님?"

정 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일과 가정 사이에서 늘 딜레마가 생기잖아. 그런데 선택은 결국 내가 해야 하고, 그 선택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야 했어."

그녀는 인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할 것 같다면, 덜 후회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했지. 승진도 물론 때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육아는 한번 그 시절이 지나면 다신 오지 않을 테니 휴직을 택했어. 그런데 나의 이런 고민과 상황을 아신 친정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줄 테니 복직해서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고.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온 거야. 덕분에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복귀해서 제 때 승진할 수 있었어."

인자는 친정 찬스를 쓸 수 있는 정 팀장이 부러웠다. 인자의 부모님은 지방에 떨어져 살고, 시부모님은 애초에 손주들을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던 분들이기에 비빌 언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에요."

"얘긴 해 봤어? 아님 남편이 휴직하는 방법도 있잖아? 혼자 애써 감당하려고 하지 마. 상황을 이해해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이 분명 있을 거야. 그러려면 인자 씨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주변에 얘길 해야겠지?"

정 팀장의 솔루션에 용기를 얻은 인자는 상태에게 육아휴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또 하나 걸리는 것이 박 과장.

"좋은 말씀 감사해요. 우선 남편에게 먼저 솔직한 제 생각을 얘기해야겠어요. 그런데 팀에 부담 주는 거 아니냐는 박 과장님 말씀이 걸리네요."

정 팀장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박 과장님 원래 그런 분이잖아. 누가 뭐래도 인자 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우선순위로 삼아.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 직장이든 가정이든 내가 나를 잃어버리면 안 돼. 결국 이 모든 게 우리 삶의 일부잖아."

인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정 팀장의 말을 곱씹었다.

"팀장님,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가 뭘 우선으로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볼게요."

정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항상 명심해.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거."

인자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공무원으로서의 길이 너무나도 힘들게만 느껴졌지만, 자신을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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