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은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시보가 해제되는 날이라 그런지 가벼운 긴장감과 설렘을 느꼈다.
임용된 지 6개월, 드디어 정식 공무원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상훈은 며칠 전부터 고민하던 끝에 부서원들에게 돌릴 떡을 주문해 두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시보떡을 돌리는 것은 일종의 관례였지만, 최근 악습이라는 논란이 있어 망설이다, 그래도 부족함이 많은 신입을 배려해 준 부서원들에게 고마워 준비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센스 있게 떡을 준비한 자신이 조금은 뿌듯했다.
[시보생활 안녕~
보람찬 6개월이었습니다.
해맑게, 친절하신 선배님들 덕에
제 앞날은 밝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유상훈 드림 - ]
'시보해제'로 사행시를 지어 스티커를 붙인 기념 떡을 들고 출근한 상훈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부서원들에게 떡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떡을 받은 박 과장은 환하게 웃었다.
"상훈 씨, 센스 있네!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까지 하고 말이야. 허허허! 시보 뗀 거 축하해!"
"네, 과장님. 감사합니다." 상훈은 고개를 숙이며 활짝 웃었다.
다른 직원들도 하나같이 상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사무실은 훈훈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떡을 나누어 주고 자리에 앉으며, 상훈은 자신이 이곳에서 잘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이 작은 행동 하나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점심시간, 동료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하나가 상훈의 귀를 사로잡았다.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상훈 씨 동기는 아무것도 안 했대. 요즘 시보 떡이 악습이라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감사의 의미로 떡을 돌리는 건데, 적어도 같은 팀원들에겐 작게 사례라도 해야는거 아냐? 6개월 동안 자기 업무에 신입까지 챙기느라 옆 사람들도 힘들었을 텐데...... 젊은 애들은 기본도 모른다는 소리가 벌써 나오는 걸 보니…" 한 동료가 수군거렸다.
상훈은 속으로 뜨끔했다.
떡을 돌리지 않는 것이 구설에 오를 만큼 중요한 문제였나 싶었다.
'떡 한 번 안 돌렸다고 이렇게 말이 나오는 건가…' 그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상훈은 본래 무심한 성격이라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작은 예의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동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가 마치 자신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듯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떡을 돌려서 다행인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저녁, 상훈은 동기들과 시보 해제 기념으로 모임을 가졌다.
정식 공무원이 되었다고 다들 들떠 잔을 기울이던 분위기는 누군가 꺼낸 '답례떡' 이야기에 점차 미묘해졌다.
그중 한 동기, 현철이 농담 섞인 말투로 상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상훈아. 너 시보떡 돌렸다고 들었는데, 사람들이 다들 센스 있다고 하더라."
상훈은 술잔을 들어 가볍게 웃어넘기며 대답했다.
"뭐,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다들 하길래 나도 한 거지."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동기, 지영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솔직히 나 떡 안 돌렸는데, 괜찮겠지? 근데 그게 꼭 해야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 지영의 목소리에는 다소 불편함이 묻어 있었다.
순간 분위기가 잠시 조용해졌다. 동기들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현철이 다시 말을 받았다. "요즘 다들 떡 돌리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잖아. 안 하면 괜히 말 나올 수도 있고. 근데 지영이는 진짜 괜찮겠어?"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왜 그래야 해? 시보 끝난 걸로 내가 뭘 돌려야 한다는 게 솔직히 좀 이상해. 나는 그냥 내 일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상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떡을 돌리면서 별생각 없었지만, 이렇게 의무적으로 강요되는 분위기는 확실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영의 말이 일리가 있긴 했다.
"근데 말이야. " 상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떡 돌리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잖아. 6개월 동안 잘 가르쳐줘서 고맙고, 그냥 사람들이 축하해 주면 좋은 거고..... 그렇다고 시보떡 안 한다고 해서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상훈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현철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러면 넌 왜 떡을 돌린 거야?"
상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떡 돌리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아서 돌렸어. 나는 그동안 도움 받은 게 많았고, 월급도 적다고 선배들이 점심도 많이 사 줬거든.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근데 떡을 안 돌린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그 사람 마음 아니겠어?"
지영은 상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남들 따라 하기보다는 진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뭔가를 하고 싶었어. 사실 나는 그렇게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느껴서 해야겠단 생각이 안 들었거든. 고마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생기면 꼭 표현할 거야."
상훈은 지영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결국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각자의 선택이지. 떡이든, 아니든 강요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중요한 건 내가 정말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그걸 편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인 것 같아."
모두들 상훈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철도 술잔을 들며 말했다.
"그래, 결국 우리끼리 너무 신경 쓰는 게 문제네. 앞으로는 편하게 하면 되지 뭐."
동기 모임은 다시 편안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상훈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4
'결국 마음이 중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