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새로 맡은 큰 프로젝트 때문에 매일 야근을 반복했다.
점점 민서와 민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시간들이 쌓여갔고, 특히 돌도 안된 막내 민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인자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은 세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새벽같이 출근 준비를 하느라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집을 나섰고, 늦은 밤 퇴근해 집에 오면 아이들은 이미 꿈나라에 있었다. 인자는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와 볼에 살며시 뽀뽀를 해 보지만,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특히 막내 민우는 엄마 품을 제대로 느껴본 적도 없이 하루하루 커 가는 것이 아쉬웠다.
하루 종일 엄마를 보지 못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인자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민서와 민찬도 어쩌면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느끼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웠다. 민우의 작은 손과 발을 어루만지며 속으로 다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엄마가 곧 너희와 함께할 시간이 많아질 거야.'
퇴근 후에도 밀려오는 피로감에 지쳐 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한 시간이 자꾸 떠올라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 인자의 희망이자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만 끝내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인자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 아침 또다시 잠든 아이들 곁을 떠났다.
남편 상태도 인자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묵묵히 맡아주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인자는 연봉 높은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친구들이 뻔한 박봉 월급의 공무원인 상태와 연애할 때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돈 때문에 싸운다'며 인자에게 남편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 했지만, 돈보다는 가정적이고 자상한 상태를 선택한 것을 잘했다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같은 조직에 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 인자야. 프로젝트 잘 끝내기만 해. 집은 내가 알아서 할게."
든든한 상태의 말 한마디에 인자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었다.
프로젝트는 점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인자는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했다.
행사일 단 하루를 위해 그동안 노력했던 결과물은 생각보다 수준 높게 만들어졌고, 행사장에 모인 시민들로부터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어냈다. 행사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과 박수갈채를 보며 인자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행사장을 나서는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여운이 남아 있었고, 이후에도 홈페이지가 올라오는 후기는 칭찬과 감사 인사가 줄을 이었다. 인자는 그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일주일 뒤, 인자는 과장님께 호출되었다.
그곳에는 국장님과 팀장님도 함께 앉아 있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국장님이 인자를 보며 말했다.
"인자씨, 이번 프로젝트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지? 현장에서 느꼈겠지만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쳐서 우리 시 이미지가 아주 좋아졌어~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고, 시장님도 만족하셨지. 그동안 정말 애썼네. 이번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승진하게 되었네.”
국장의 말에 인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육아휴직과 승진이라는 선택 속에 겼었던 갈등, 남편의 희생,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가졌던 죄책감, 인자는 그동안의 노고가 떠오른데 이어 행복감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인자는 상태에게 특별 승진을 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상태는 인자를 와락 끌어안고 말했다. "정말 잘 됐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인자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는 가족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내겠다는 다짐을 마음속에 새겼다.
지금까지 인자의 하루하루는 버거웠지만, 그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세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건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자신이 맡은 일에서 오는 성취감이었다.
인자는 주변의 많은 워킹맘들이 자신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출근길에는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 퇴근 후에는 육아의 부담감에 짓눌리는 워킹맘들.
그들에게 그녀는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녀 자신도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다독여준 건 비슷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말이었다. "우리가 힘들어도 결국 아이들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거야." 그 한마디에 다시 힘을 얻곤 했다.
그러다 인자는 문득 생각했다.
‘나도 이런 말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받은 사랑과 응원을 다른 워킹맘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들도 나처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인자는 워킹맘들을 위한 작은 모임을 꿈꾸기 시작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공간.
인자는 그 모임이 단순히 공감만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되었으면 했다.
인자는 후배들에게,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워킹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 기대고 나아가요.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 꿈을 품은 인자는 더 이상 힘든 상황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바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