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by 온리원

맑고 무더운 여름 아침, 상태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아이들을 깨웠다.

출산휴가를 마친 인자는 회사에 복귀하면서 시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승진을 앞둔 터라 더욱 중요한 업무가 주어졌다. 업무량도 많아져 책임을 다하느라 인자는 어쩔수 없이 일찍 출근해야 했다. 때문에 민서와 민찬의 등원 준비는 온전히 상태의 몫이 되었다. 4개월에 접어든 막내 민우를 돌보는 일까지.


인자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 나갔고, 상태의 하루는 남겨진 세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동생이 한 명 더 생긴 7살이 된 민서는 스스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제법 의젓했다. 하지만 막내의 자리를 빼앗긴 민찬은 날이 갈수록 사소한 일로 상태를 힘들게 했다.


점점 더워지는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민찬은 장화를 고집했다.

"민찬아, 오늘은 너무 더워서 장화 신으면 힘들 거야. 운동화 신자." 상태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민찬은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장화를 가리키며 "아니, 나 이거 신을래!"라고 고집을 부렸다.


등원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진 상태는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장화는 비오는 날에 신어야지~"

칭얼대는 민우를 아기띠에 안고 민찬을 구슬려 보았지만, 장화를 신고 이미 문을 나서는 아이를 보며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민찬, 제발 아빠 말 좀 들어! 왜 고집을 부려? 더워서 힘들 거라니까!"

아빠의 큰 소리에 민찬은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았지만 장화를 벗진 않았다.

상태는 자신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욱'해버린 걸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민서와 민찬의 손을 잡고 서둘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고, 겨우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니 이미 진이 빠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태는 문득 인자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민우가 태어나기 전, 만삭이던 인자가 아이들에게 짜증내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했던 그 핀잔.

"애들한테 좋게 말해도 될 걸 왜 짜증내면서 말해?"

상태는 그 땐 알지 못했다. 당시엔 자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의 상황을 겪고 나니 그 말이 인자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 깨달았다.


'몸이 이렇게 힘드니..... 자꾸 화를 내게 되는 거구나.'


그 순간 상태는 깨달았다. 육아가 단순한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인자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인자가 퇴근해 돌아왔다.

"엄마 왔다~"

민서와 민찬은 인자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인자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두 아이를 힘껏 안았다.

"민우는? 오늘 하루 어땠어?"


인자는 가볍게 물었지만, 상태는 잠시 멈춰 인자를 바라보았다.

"나...... 자기가 왜 애들한테 짜증내면서 말했는지 이해가 되더라." 상태는 아침에 겪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애들 등원 준비하는데 날은 덥지, 민우는 칭얼대지, 민찬이는 이 날씨에 장화를 신겠다고 우기지, 몸도 힘들고 시간에 쫓기니까 나도 모르게 화가 나더라.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던 것 같아."


상태의 고백 아닌 고백에 인자는 속으로 통쾌해 했다.

"솔직히 자기가 나한테 '왜 애들한테 좋게 말하지 않느냐'고 했을때 얄미웠어. 힘들고 지쳐서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거였는데 너무 나를 몰아붙이는 것 같아서...... 내가 속으로 '니가 한 번 해 봐라!' 겪어보면 안다!' 생각했는데 이제 알겠지?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니깐?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훌륭한걸?"


인자의 말에 머쓱해진 상태는 저녁을 차릴 준비를 했다.

"얼른 손 씻구 와. 진짜 워킹맘들은 대단한 것 같아. 육아만으로도 벅찬데 일까지 하니......."


인자는 미소를 지으며 상태의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톡톡 치며 말했다.

"오늘 고생 많았어. 그래도 할만 하지? 알고보면 육아가 체질인거 아냐? 호호호~"

상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빨리 복직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맞추고 미소를 나누었다. 상태는 오늘 하루 동안 경험한 육아와 가사의 고단함을 통해 인자의 고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진정으로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아내의 노고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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