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차이

by 온리원

단이는 복직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연차를 내고, 인자가 조언한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평소 로망이었던 평일 낮에 카페에 가보는 일을 드디어 실천할 수 있었다.

어느새 두 돌이 지난 딸 지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

한여름의 무더위가 예상되는 아침이었지만 햇살은 부드럽게 비추었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왔다. 단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출근 차림으로 집을 나선 단이는 지우를 무사히 등원시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네 카페를 찾았다. 평소에는 지나치기만 했던 그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켰다.


매일 마주쳤던 바깥 풍경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늘 바쁜 출근길에 가볍게 지나쳤던 나무들, 가게들, 그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일상 속 배경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단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 커피 향에 집중했다.


"이게 평일 낮의 여유구나..."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며 그녀는 문득 이 순간이 꿈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후 1년 동안 숨 쉴 틈 없이 바빴던 일상이 눈앞에 스쳐 갔다. 처리하면 또 다른 건으로 접수되는 민원서류들, 지우를 돌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날들, 그리고 워킹맘으로서의 책임감과 동료들에게 피해를 덜 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게 실감 났다. 그동안 단이는 언제나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직원, 누군가의 아내였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단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카페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저 지금을 만끽했다.



카페 음악을 배경으로 상념에 빠져 여유를 누리던 중,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자연스레 귀가 기울어졌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한 여자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전업주부인 듯 보였고, 목소리에는 어느 정도의 피곤함이 섞여 있었다.


“아, 정말 요즘 애들 학원 픽업 때문에 너무 힘들어. 오전에 애들 학교 보내면 한숨 돌릴 새도 없잖아.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나면 애들 하교 시간 돼서 학원 데려다주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진짜, 나는 하나인데도 학원 두 군데 라이딩하느라 지치는데 둘, 셋이면 어쩔 뻔했어~ 워킹맘들은 이런 고충을 절대 모를 거야. 출근하면 그냥 직장에서 일만 하다 오잖아. 우리는 하루 종일 애들하고 씨름해야 하는데.... 차라리 일하는 게 낫지."


그 말을 들은 단이는 순간 어이가 없어 고개가 옆 테이블로 자연스레 향했다.

‘직장에서 일만 한다고? 그게 다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며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워킹맘의 삶이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간단해 보였던 걸까?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라, 집에 돌아오면 육아와 가사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반복이란 걸 이들은 알까?


화가 올라오는 마음을 가다듬고 단이는 다시 조용히 커피를 들이켰다. 처음엔 어이없고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누구나 보이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애들 학원 시간 맞춰서 다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진짜 나중에 시간표 짜는 것도 일이야.”


그들의 대화는 이어졌고, 단이는 여전히 그 말들에 동의하기는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나름의 힘든 일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전업주부로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가사 일을 해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 나름대로의 고충을 안고 있었고, 워킹맘인 자신은 또 다른 종류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단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모두가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힘듦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겪고 있는 고충을 모른다고 해서 그걸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커피 잔을 천천히 비우며 단이는 마음속에서 무거웠던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모두가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이 무게들이 가벼워질 날을 기대하며.


단이는 창밖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평온한 햇살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았다. 평소에는 육아와 일로 가득 차서 그저 매일을 버티는 느낌이었지만, 오늘처럼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토록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단이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지우의 사진을 천천히 넘겨봤다. 눈을 동그랗게 뜬 지우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지우도 잘 지내고 있겠지?" 혼잣말을 하며 그녀는 마음 한편의 미안함과 사랑이 동시에 밀려왔다.


딸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일을 하고, 가끔은 자기 자신도 잊고 살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이 있어 단이는 또 한 번 자신을 다독일 수 있었다. 이 여유로운 시간이 앞으로의 힘든 날들을 버텨낼 에너지가 되어 줄 거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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