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명 Jul 05. 2024

마지막 바늘

유씨 부인의 바늘에 대한 애도, 그리고 마음의 병

 댁들에 동나지이 사오, 저 장사야, 네 황후 긔 무엇이라 외나니 사자

 외골내육(外骨內肉), 양목(兩目)이 상천(上天), 전행 후행(前行後行), 소(小)아리

 팔족(八足) 대(大)아리 이족(二足), 청장(淸醬) 으스슥하는 동난지이 사오

 장사야, 하 거북히 외지 말고 게젓이라 하여라    

 

                                          -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작자 미상 -    


      

게들과 게젓(게장).  맛있는 반찬이긴 하지만 치아를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기생충도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기생충은 어떻게 조심하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위 사설시조에서는 게젓장수가 현학적 태도로 한자어를 구사하며, 게젓을 파는 모습을 희화화하여 풍자하고 있다. 그냥 게젓 혹은 간장게장을 판다고 하면 되었지, 어려운 한자를 빌어 그럴듯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게젓장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 소재에 어울리지 않는 난해한 표현으로 점철되었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학식을 자랑한다기보다 답답하고 참담한 자신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여류 수필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작품은 조선 순조 때의 인물이었던 유씨(兪氏) 부인의 『조침문(弔針文)』이라는 수필이다. 19세기 중엽의 인물로 추정되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가 없는 유씨 부인은 남편을 여의고 자녀 없이 독수공방하는 청상과부이다. 아래에서 보면 결코 평범한 규수의 필력이 아니기에, 비록 삯바느질을 하는 곤궁한 처지이나 양반 사대부 가문에서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나의 신세(身世박명(薄命)하여 슬하(膝下)에 한 자녀(子女없고인명(人命)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가산(家産)이 빈궁(貧窮)하여 침선(針線)에 마음을 붙여널로 하여 생애(生涯)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오늘날 너를 영결(永訣)하니오호 통재(嗚呼痛哉)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조침문(弔針文)-    



 한 개의 바늘을 애지중지하며 27년간 사용했던 유씨는 어느 날 그 바늘이 부러지자 잠시 혼절까지 하였고, 마치 바늘을 살아있는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며 바늘의 죽음(?)에 대해 애도한다.     


     

아깝다 바늘이여어여쁘다 바늘이여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추호(秋毫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이러한 유씨 부인의 한탄은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인데, 현대 심리학으로도 접근이 가능할 것이고, 유아교육학적으로도 연구해볼 수 있는 것은 유씨 부인의 마음이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애착 인형에게 가지고 있는 심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아끼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이와 대화하며 정(情)을 쏟는 현상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애정의 결핍에 따른 외로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쯤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유씨 부인은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거슬릴 때도 있나니”라고 하여 누구보다 자신의 ‘바늘’이 더욱 소중함을 숨기지 않는다.      


 시대를 불문하고 남성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안을 꾸준히 강구하여 왔다. 그 방안이 비록 자신에게 해가 될지라도 말이다. 유씨와 동시대인 순조 때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기록에 의하면 ‘두부추탕’이라는 음식이 나오는데, 차가운 생두부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같이 솥에 넣고 끓이면 미꾸라지가 뜨거운 물을 피해 생두부로 파고든다고 한다.  


'두부추탕'의 두부와 미꾸라지.  두부 안에 든 것이 건포도는 아닐 것이다... 검은 콩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두부 속에서 죽은 미꾸라지를 그 상태 그대로 썰어 만든 것이 ‘두부추탕’인데, 명물로써 백정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남성들은 현실을 잊을 도피처로 생두부를 택하여 결국 두부추탕의 미꾸라지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힘든 마음이나 외로움을 미봉책으로 달랠 수 있는 피난처를 여성에 비해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없다면 스스로 다양한 피난처를 만들어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여성들은, 특히 조선의 그녀들에게는 피난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전무했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 균의 누나 ‘허난설헌(蘭雪軒許氏, 1563~1589)’은 남편인 김성립과의 원만하지 못한 결혼생활로 언제나 자조하며,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한탄하였다. 허난설헌의 여러 작품에서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겠지만, 특히 『규원가(閨怨歌)』에서는 남성 위주의 유교 봉건사회를 살아가는 여인의 한과, 바람기 있고 방탕한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허난설헌이 특별한 지병도 없이 세상을 떠난 것에는 마음의 병이 그 이유가 되었으리라. 오늘날 ‘우울증’으로 불리는 마음의 병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 우리 민족의 ‘한(恨)’이라는 정서 역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언어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성인 8명중 1명 우울증…여성이 남성의 2배 (naver.com) 


https://youtu.be/GRzWW1d8ces?si=MtySZGqXHpYdo6BV



(無罪)한 너를 마치니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누를 한()하며 누를 원()하리요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하지 아니하면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오호 애재(嗚呼哀哉)바늘이여.   


       

 유씨 부인의 『조침문』은 바늘을 의인화하여 제문(祭文)형식으로 쓴 국문수필이다. 양반집 규수로서 일찍이 문벌좋은 집으로 출가했다가 슬하에 자녀도 없이 과부가 된 유씨는 자신의 바늘에 대한 안타까움과 섭섭한 심회를, 바늘과의 내세를 기약하면서까지 나타내고 있다. 


 기약 없이 지속되는 어려운 생계와 지독한 외로움으로 말미암아 일상적 사물에 불과한 ‘바늘’에 의지하게 된 유씨 부인은 아마 허난설헌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으리라. 아니, 오히려 더 심했으리라. 그 병은 유씨가 아끼는 바늘이 부러지자 이내 활약하기 시작하여 유씨 부인을 바늘과 같은 운명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유추일까. 미국의 작가 오헨리(O.Henry, 1862~1910)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며, 피어나고 있는 연기를 애써 흩어본다.     



허난설헌의 초상화.  그녀는 27세에 특별한 이유없이 사망하였는데 우울증과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측은 옛날에 사용하던 바늘.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역시 오!  헨리!!


작가의 이전글 절 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