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조심하라!
오늘도 몇 번의 결정을 내렸는지 모른다. 아침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늦은 오후까지 짧은 생각, 긴 생각을 하면서 무념무상인 표정도 짓다가 잔뜩 심각한 얼굴도 해보며 수많은 결단을 내리고 있다. 누가 본다면 ‘어느 조직의 ‘장(長)’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니다. 오늘 필자가 내린 결정은 점심으로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아내에게 전화와 문자 중 무엇으로 연락할지, 이따 저녁식사 약속에서 친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할지 등 지극히 일상적인 사항들에 불과하다.
이러한 필자와는 달리 2023년에 개봉한 ‘서울의 봄’에서는 자신을 넘어 나라의 운명이 달린 중차대한 연쇄적 결정을 한 인물들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1979년 10·26 사건 이후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발생한 12·12 군사반란 실화를 바탕으로 그날 밤의 9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각색을 거쳤기에 인물명이나 세세한 내용들에 허구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전체적인 뼈대는 역사적 사실을 오롯이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육군 내 사조직을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이에 맞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이 진압군과 함께 권력 찬탈을 막으려 하지만, 치열했던 일촉즉발의 9시간이 지난 후 결국 쿠데타는 성공하게 된다. 이 영화는 애초에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로 인해 천만 관객이 넘는 대성공을 거두는데, 이에는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등과 같은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의 역할이 한 몫을 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시절부터 스포츠맨으로서 남다른 리더십과 통솔력을 보여왔던 전두광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야망이 솟아오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슴 속 깊이 품어왔던 권력을 향한 광기 어린 집념이 마치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공기를 만난 불꽃 마냥 격정적으로 타오른 것이다. 그 권력에의 집착은 냉정하게 보기에도 상당한 무리수를 안고 있는, 반란이라는 결단을 일사천리로 실행할 수 있도록 강하게 이끌었다.
가장 상위에 있는, 즉 관련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의 결정은 그 이하 다수의 세부 사항들을 자동적으로 제시 및 결정해 주기에 전두광의 모든 행동과 선택은 ‘권력’이라는 단어 하나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생각해 보면, 우리의 선택과 결정도 전두광과 같이 국가적 차원은 아니겠지만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의, 이번 달의, 나아가 올해의 큰 목표부터 우선 세워놓으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누구와 연락하여 만나야 하는지 등 상세한 계획들이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전두광은 처음부터 ‘권력 찬탈’이라는 불변의 목표를 최우선으로 정립하고 하위 요소들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배치 및 운용하여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이와 비슷한 예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위화도 회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말의 무신(武臣)으로 명장이었던 이성계가 이전부터 야망을 품고 있었는지에 대한 물증은 명확하지 않으나, 의심이 필요 없는 심증은 평범한 물증을 능가하는 법이다.
아마 이성계 또한 복심(腹心)에는 왕위에 대한 열망이 화산 속 깊은 곳의 마그마와 같이 잠재하여 있다가, 북벌(北伐), 즉 요동정벌이라는 진퇴양난의 불가피를 조우할 때에야 용암으로 높이 솟구쳐 오른 것이리라.
그 막을 수 없는 분출로 말미암아 고려의 충신 최 영(崔瑩, 1316~1388)은 이성계 일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이 때 만약 자신에게 권력에 대한 탐욕이 있었다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 유언하였다. 처형 후 실제로 그의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아서, 이에 적분(赤墳)이라 불렀다고 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의 파급력은 의외로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했던, 그리고 앞으로 할 선택들은 나의 삶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소위 ‘변수’라고 지칭할 수 있는 나의 모든 선택은 어떻게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선택이 크든 작든, 내가 그 파장을 인식 혹은 예측하든 아니든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의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평소의 생각도 나의, 당신의 인생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생각만으로 상대방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나의 선택과 결정은 생각이 기회를 만났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산출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그리고 영향을 받은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후속 영향을 받기에 우리 생각의 파급은 소위 ‘나비효과’의 패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12·12 군사반란으로 탄생한 군부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알고 있다. 전두광의 오랜 야망과 빈틈을 노린 반란에의 결단은 이듬해 수많은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낳고 말았다. 무엇보다 수십 년 전으로 회귀할 것도 없이 작년과 올해 2025년 사이에도 누군가의 ‘결단’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이미 바뀌었고, 이는 세계의 미래도 달라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역사가 증명하듯 생각은 결정을 낳고, 그 결정은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이(變異)하여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마는 것이다.
살아감에 있어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혹은 가혹하게 돌진하는 모든 운명의 상황은 바로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생각들의 후손이다. 그들은 기어코 우리를 찾아오지만 슬프게도, 그리고 대체적으로 우리는 그가 내가 낳은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