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를 통해 살펴본 조상신에 대한 단상과 제언
2021년 4월 29일에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라고 판시하여 타인의 토지 위에 묘소를 설치한 분묘기지권자(墳墓基地權者)에게 토지소유자가 토지사용료(지료)를 청구하면 그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전하였다. 기실 분묘기지권자는 자신의 토지가 아닐 지라도 예전부터 그 땅에서 묘소를 관리해 왔다면, 오히려 갑(甲)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기존의 입장을 뒤엎는 위 판결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매장문화는 환영받을 수 없다는 정책적인 뉘앙스도 풍기는 듯 하다. 왜냐하면 토지사용료를 내면서까지 조상의 묘를 관리하려는 후손은 아무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의 토지에서 이장하여 납골당으로 모시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조상의 묘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라는 풍문이 유교사상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불교나 무속 민간신앙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우리들은 이를 기정 사실로 여기며 두려워하기도 하는데, 2024년에 개봉한 ‘파묘(破墓)’는 이러한 정서를 흥미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거부(巨富) 재미교포로부터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이 재미교포 집안에서 정체 모를 병이 대물림되는 원인으로 조상의 묫자리를 지목한다. 즉 사람이 절대 묻혀서는 안되는 ‘악지(惡地)’라는 것인데, 이에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묘를 잘못 건드리면 어떠한 화가 미치는지 잘 알고 있는 노련한 풍수사 상덕은 화림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거듭된 화림의 설득에 이들 넷은 팀을 이루어 이장을 위한 파묘를 시작하는데...
필자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들을 주관해왔던 ‘조상의 묫자리’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이왕이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묫자리가 보기도 좋고 여러모로 좋겠지만, 한정된 국토에서 모든 후손들이 소위 ‘명당(明堂)’에 조상의 묘를 모시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을 포함하는 조상들이, 당신들의 묫자리가 나쁘다고 영적이며 초월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후손들에게 벌을 내리는 것에 과연 일리가 있을까? 사실 일리가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로까지 여겨져 왔겠지만 만약 그러한 조상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유혹하고 해치는 ‘귀신’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반대로 ‘명당’에서는 자손들을 잘 되게 하여 복을 주는 이중적인 모습의 조상신을 우리는 상정하고 있다. 사유의 실타래를 계속 풀어나가 보면, 필자 또한 언젠가 세상을 떠나 어떠한 형태로든 유골이 남아있게 될 텐데, 그 (유골의) 보관·관리 방식과 과정이 미흡하다고 하여 나의 자녀나 후손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현재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변하여 정착이 되었고, 최소한 서양의 경우에도 조상의 묫자리로 인해 후손의 운명이 갈린다는 얘기는 꺼내기도 민망할 정도의 미신으로 여겨질 것이기에 풍수지리 중에서도 조상의 묘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이상 과도한 기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파묘를 시작한 네 명은 훼손된 관에서 ‘험한 것’이 나와 물리적으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풍수사 상덕과 무당 화림은 풍수지리와 무속의식(굿)을 총동원하여 이 험한 존재를 봉인하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문제 해결을 의뢰한 재미교포가 알고 보니 과거 친일세력이라는 것과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망령에 대한 철퇴라는 또다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이 영화는 천만 관객을 넘는 대흥행을 거두게 되는데, 여기에는 최민식과 김고은, 유해진이라는 명품 배우들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공포물로도 볼 수 있는 ‘파묘’는 역사적인 흔적과 함께 전통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특색있고 맛깔나게 버무려 감동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며칠 전 초등학생 딸이 길을 가다가 (딸의 관점에서) 큰 개를 보고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개는 사람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도망치면 더 공격할 수 있다는 충고를 딸에게 해주며 필자는 이 영화 ‘파묘’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가 ‘조상의 묫자리’에 울고 웃었던 이유는 우리가 그 두려움을 온전히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조상님들께는 당신께서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이후로는 후손인 우리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영화 ‘파묘(破墓)’는 이제 그러한 의미로 다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