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듯이, 내일도 오늘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오늘 아침도 나는 허겁지겁 이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의 마음은 이미 희생양을 찾느라 사고(思考)의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모두를 급가동 시키고 있다.
‘그냥 일어나라고 깨우지만 말고 몇시인지 말을 해줘야지... 참나!’
이럴 때만 성능 좋은 와이파이는 금방 속죄양을 포획하고 말았다. 나의 아내였다. 와이프가 내 와이파이에게 걸려든 것이다. 정확히 일주일 전 아침에도 마찬가지의 속건제(guilt offering)가 우리집에서 드려지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속건제는 거의 매주 비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지겹고도 부끄러운 의식이다. 내가 늦게 일어난 것을 애써 깨우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남 탓을 함으로써 나의 경쟁력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결혼 전에도 나는 매주 아니 거의 매일아침 속건제를 드렸다. 그때의 희생제물은 아내가 아닌 어머니 였다. 그 희생물은 지금의 제물보다는 만만치 않아서 제단에 결박시키는 것조차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따금씩 뿔로 나를 위협하거나 제단에서 빠져나가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학창시절이나 결혼 전까지 아침에 늦잠자는 나를 한두번 깨우시고는 그냥 놔두시는 방법을 택하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어디에서도 희생제물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알아서 속건제를 드리지 않도록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희생제물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희생양을 잡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은 당사자로 하여금 속건제를 남용하도록 만들 수 있다. 내가 잘못을 했어도 누군가가 그 허물을 대신 감당하기에 속건제를 드리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언제나 나의 모자람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르게 된다.
모두가 ‘과거’ 보다는 ‘미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잠재적으로나마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보다는 예측이 어렵고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궁금증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타임머신이 있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미래’에 먼저 가본 후, 다음으로 ‘과거’를 돌아볼 것 같다. 하지만 나의 현재는 온전히 과거의 소산이고, 나의 미래는 온전히 현재의 소산이다. 삼단논법으로만 따진다면 ‘나의 미래는 나의 과거의 소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음주 목요일 아침에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다. 아마 저번주 목요일 아침과 같을 것이다. 나의 다음주 목요일은 이번주 목요일 아침과 같이 ‘속건제’를 드리는 날이 될 것이다. 다다음주 목요일에도 역시 제사가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서의 ‘변수’가 조금만 바뀌어도 미래가 쉽게 변해버리는 SF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나의 시간여행에서는 웬만해서는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 나의 미래를 바꾸는 요소들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말한 다음의 세 가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변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시간배분을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것이며, 셋째는 교류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이외로는 인간을 바꿀 수 없으며, 가장 무의미한 시도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무의미한 시도를 말한 부분에 가장 공감이 간다.
혹여나 나에게 타임머신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굳이 ‘미래’로 가보려 하지 않을지 모른다.
타임머신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나의 어제는 그제와 같았고,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나의 내일은 오늘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의 생각이나 습관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 않는 한 이것은 100% 확실하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통해 ‘장밋빛 미래’로 가보고 싶어하는 것도 사실은 ‘야무진 꿈’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선택과 시도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미래가 훗날 기다리고 있어서 혹시나 시간여행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 때 ‘깜짝 놀라게 될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앞날을 눈치 채고 있으면서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에서 말한 누군가의 세 가지 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어제와, 오늘과 다른 가치관과 행동으로 내일을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타임머신이란 안산의 반월공단에 매물로 내놓을 중고기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타임머신이란 과거와는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살아갈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선물과 같은 것이다. 단지 깜짝 놀라고 싶은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예상치 못한 장밋빛 미래’만을 기대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는 ‘타이머(Timer)’라는 신(神)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타임머신은 이미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