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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Mar 28. 2020

모조 전지 한 장으로 하루 보내기

청소는 덤


바쁜 식당에 가면 식탁 위에 여러 장 덮어놓고 손님 갈 때마다 한 장씩 벗겨가며 쓰는 모조 전지.

이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아이와 집에서 하루를 보내보자.


일차 놀이는 그리기
먼저 마음껏 그리는 시간을 가진다

저 한 장의 그림 안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이는 누가 만나고, 헤어지고 어디를 들어갔다가 나왔는지를 조잘조잘 떠들며 전지를 빼곡히 메운다. 그리기 전에 책을 읽어주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많이 읽은 후라고 가정하고.

여기서 엄마 역할은 별로 없다. 모조지 한 장만 제공하면 된다. 엄마는 아이에게서 한걸음 떨어져 설거지하고, 졸기도 하고, 몰래 당을 보충하기도 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 하면 된다 엄마가 뭘 해도 아이는 관심 없다.



이차 놀이는 자르고 붙이기


엄마의 손길이 조금 많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엄마의 손길이 조금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가 그림 그리는 동안 많이 쉬었으니까 힘을 낼 수 있다.


엄마는 가위와 풀로 옷을 짓는다.

처음부터 '엄마가 옷 지어줄게!'라는 말을 하면 갈 길이 먼 줄 모르는 아이는 완성된 옷을 이미 머릿속에 그려놓고 빨리빨리를 외치게 된다.

고로 그런 말은 삼가며 가위와 풀만 챙겨두고 슬며시 아이가 그린 그림 설명도 들어보고 거기다 같이 끄적여보기도 하면서(엄마가 그림 못 그린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요맘땐 뭘 그려도 아이가 눈이 휘둥그레져 엄마를 볼 때니까) 놀이에 참여한다.

옷의 재료가 아이가 그림을 그린 모조지 이므로 재료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어느 정도 모조지를 함께 공유한 느낌이 들었을 때 엄마는 엄마가 그린 부분을 잘라내 팔찌 하나 만들어 끼워본다.

나도! 나도!

그럼 엄마 그림 잘라 아이도 하나 채워주고 (생색내고)

다음은 치마 도전.

아이는 자기 그림이 잘려 치마가 되어도 뭐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다음은 윗 옷 도전.

우리 아들은 그때 한참 겨울왕국 안나에 빠져있던  터라 안나로 변신했었다.

나는 가위질하느라 손이 많이 아팠겠으나 아픈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던 기억과 보조개 파이게 흡족하게 웃은 아이 사진이 남았다.



삼차 놀이는 잘게 쪼개기
청소가 두렵지만 그래도 종이니까......

엄마의 가위질 구경도 많이 했고 아이도 스스로 가위질을 해볼 용기가 생겼을 때 아이용 가위를 쥐어주고 거추장스러운 옷은 잘라낸다.(너무 소중해진 옷은 조금 놔둬도 좋지만 어차피 이차 놀이까지 끝난 종이니 심하게 애착을 가지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안나 머리는 아까워 못자르고 치마를 잘랐다.)

한번 자르기 시작하면 멈추기 쉽지 않은 놀이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차 한잔 하며 아이의 가위질을 감상하면 된다. 청소는 지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잠시 현재를 즐기다 보면 거실 바닥에 눈처럼 종이가 소복이 쌓일 것이다.


사차 놀이는 뿌리기


일단 엄마가 조금 모아서 살랑살랑 뿌린다. (많이 뿌리지 말자. 아이가 무서워하더라.)

아이가 돌고래 소리 내며 한번 더! 를 외치면

아이에게도 뿌려주고 그다음에는

'엄마도 뿌려줘.' 하면 된다.

적당한 자리에 착석해서 아이가 뿌려주는 눈 다발을 맞으면 그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안도감과 아이가 즐거워한다는 기쁨, 누군가 내 얼굴이 무엇을 뿌리고 있고 나는 맞고 있다는 사실들이 섞여 묘한 기분이 들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도 꼭 필요하다. 이것은 청소를 위한 엄마의 전략이니까.

아이는 엄마에게 뿌리기 위해 종이 조각을 모을 것이다.

더 많은 눈을 바라면 더 많이 모을 것이다.

더 많이!

더, 더!

그때

지퍼백을 꺼내 주면 더 신나서 모을 것이다.

그리고 지퍼백이 꽉 찼을 때 고백을 하자.

'눈 놀이 정말 재밌다. 엄마는 내일 점심에 눈이 맞고 싶어.'라고 고백하면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은 이제껏 재미난 놀이를 해준 엄마를 위해 기꺼이 지퍼백을 보관할 것이다. (한 번도 안맞아주고 고백하면 안 통한다.) 내일 점심에 또 눈을 맞아야 하겠지만 내일 점심에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계획하면 되고 혹시 아이가 눈을 뿌려준다면 '우리 아이 기억력 짱 좋구먼!'하고 감탄하면 될 일.


어느새 사차까지 갔다!

청소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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