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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세 Jan 25. 2021

그림그리는 방랑자가 세상을 견뎌내는 법

3-바닥을 뚫고 저 지하까지 


마지막 포스팅을 남긴 지 한 달 하고도 약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자성의 시간도 나름 가져보고 앞으로 내가 뭘 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하다 근본적인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바람에 아무런 창작활동도 할 수 없었다. 이젠 작년이 됐지만 그래도 연하장을 그려서 지인, 그동안 내 곁을 지켜주신 고마운 분들께 돌리고 싶었고 앞으로 더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을 전달하려 했는데 그마저 여의치 못했다.


그래도 내 창작물을 기대하고 업로드 되길 기다린 분들도 계셨을텐데, 여러모로 공수표만 날리게 된 꼴만 보여드린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작년 11월 이후로 나는 거의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으니.


근본적으로 이제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란 생각부터 들었다. 물론 SNS상 이미지가 완전히 추락했다고 해서 먹고 살 길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나름 주 수입원이자 내 삶의 터전이었고, 그럭저럭 잘 쌓아온 이미지를 내 스스로 망가뜨린 것이나 다름 없으니 개인적으로 밝히고 싶은 이야기나 억울함과는 별개로 내 추악한 모습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동안 펜을 놓느라 그림을 그리는 방법 조차 잊어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여러가지 송사를 아직도 한번에 모두 겪고 있느라, 엠바고에 부쳐야 하는 일들도 정말 많았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여러가지 감정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차라리 좀 더 참아라도 볼걸. 어느 인기 걸그룹이 냈었던 타이틀 곡 도입부처럼, 내 꼴이 딱 그꼴이었다.


보란 듯이 무너졌어, 바닥을 뚫고 저 지하까지. 옷 끝자락 잡겠다고 저 높이 두 손을 뻗어봐도 다시 캄캄한 이곳에


가사처럼, 작년엔 아홉수를 너무나도 지독히 겪는 바람에 더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질 만큼 아득한 심연을 경험했다. 더는 창작 활동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부족한 나를 믿고 계속 곁을 내주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여기저기 알릴  수도 없는 상황 이었기에 비명을 지를 수 없도록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생살이 뜯겨지고 온 몸이 불에 달궈지는 듯한 고통을 겪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상황이 나아질 거란 기대도 해봤었다. 다행스럽게도 외적 상황만 따져보자면 그랬지만 나 스스로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점점 걷는 것도 힘들어지고 감기 증상은 몇 주 넘게 떨어지질 않았다. 심지어 코로나 의심 증상까지 생겨 자가격리 신세를 면치 못하기도 했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방에서 나올 생각조차 못했던 데다가 안면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마주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냥 말 그대로, 사람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린다 해도 지하철을 포함한 대중교통엔 늘 사람이 넘쳐나고, 쇼핑 센터 같은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경제활동을 해야 사람이 먹고 사니까.


점점 더 심해지는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 날이 갈수록 나에게 드는 확신이 줄어들며 심해지는 무기력증들. 나와 분명 함께할 것들이 있음에도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기다림을 감내해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미안했다. 스스로 이제 그만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다그쳐 보기도 했다. 꾸준히 통원 및 상담 치료도 다니고 내담자로 등록된 지자체 자살예방센터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던데다 그럴수록 도피성 수면은 더 심해지고 움츠리기만 했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사람과 마주앉아 진득하게 얘기 나눌 공간이 없어지다보니 겨우 발 붙이고 서있는 공간에 나 혼자만 갇힌 듯 했다.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라 밖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슬슬 한계점에 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내 머릿속을 가득채우는, ‘한심하다’라는 생각이 도무지 떠나가질 않았다. 내년엔 이거저거 해봐야지, 또 나를 계속 끌어올려준 몇몇 프로젝트들의 연장선에서 더 발전시킨 무언가를 내보거나 새로운 개척지에 문을 두드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 스스로 그런 길을 망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 일궈 놓은 내 길을 부수고 지워서 내 눈을 내가 찔러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아서 절망 속에 한 달을 보냈다.


이렇게 몸을 웅크리고 계속 혼자서 자책하며 가장 기뻐야 할 생일도 그저 그렇게 보내는 동안 다시 삶을 놓고 싶은 생각도 생목이 올라오듯 울컥울컥 올라와댔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로 알게 된 지인분이 얼어붙었던 내 심장을 녹이는 듯한 말을 건네왔다. 


이제 바닥을 찍었으니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어. 억울한 일을 가장 잘 풀어내는 법은 네가 보란듯이 잘 살아주면 돼. 이전엔 받쳐줄 사람이 없었다 해도 나라는 사람이 있으니 나쁜 일들 전부 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이 말에 번쩍 정신이 들기도 했지만 망가진 호르몬을 다시 없었던 일로 돌려 다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게 디지털 작업을 해내야 할 타블렛이 고장나기도 했고 놓았던 그림도구들 먼지를 털기에 내가 지금이라도 당장 그림을 그릴 명분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혼자 떨고 지내는게 걱정됐던 건지, 임시 거처에 간간히 찾아와주는 동생이 지나가버린 한 해는 다 잊고 올해는 더 잘 될거라며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생이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나혼자 세상에 남겨진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글을 투고한 시점에 누군가 “지금은 괜찮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뭐라도 시작을 끊어놔야 할 것 같아서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 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작은 것부터 조금씩 해나가면 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나니까.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 혹은 그 이상은 덜할 것이다. 으레 그렇게 겪어왔듯 뭔가 하나를 달성하면 그 나머지를 도전하는데 크게 두려움을 겪진 않을테니까.



한 달 넘게 브런치에 아무런 근황, 알림도 없이 글 업데이트가 중단돼 놀라셨을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과 함께 그간 꾹꾹 눌러 담아왔던 이야기들을 전부 꺼내보았다. 아직도 사정상 말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잠시 좀 더 숨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하려 했던 이야기들도 다시 꺼내보려 한다. 3달 넘게 실직자로 있다 보니 현실감각 뿐만 아니라 신체 리듬까지 많이 망가져 정상화 시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상 완결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으니 끝매듭은 꼭 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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