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음이 자라는 시간
그동안 끊겨있었던 브런치를 들어갈 마음이 들 여유가 없었다.
2021년만 해도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예상치 못한 송사에 휩쓸리기도 하며 여러 기회와 박탈을 오갔던 한해를 보냈었다. 이제는 거의 대부분 해결되어 마무리를 짓는 단계에 있지만, 모든 일의 끝은 늘 매끄럽지만은 않다. 누군가 제대로 어떤 마음을 품기 시작하면, 그걸 거두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본인을 제외하고 말릴 수는 없는 것 같다.
2021년동안 많이 울기도 울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잠시나마 웃을 수도 있었지만 다시 눈물로 다가왔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나마 내 척박했고 황량하기만 했던 삶에 잠시나마 단비가 되어주었지만,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제 갈길을 가게 됐다. 그로부터 어디에도 크게 알리지 않고 여름, 겨울 일러스트페어를 참가했고 책도 한 권 더 냈다. 또 송사를 진행하던 와중 몸에 심상치 않은 징후가 생겨 큰 병원을 몇 번 오갔더니 '섬유근통'이라는 희귀병을 얻었다. 정확히는 희귀난치병인데, 국가에서 아직 산정해주지 않는 중증 난치병이라 많은 환우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다.
잠깐 이 병에 대해 얘기하자면, 언제 어디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질환이 찾아온다고 한다. 분명히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생기는 단순 스트레스로 인한 기력 저하인줄로만 알았다가, 피검사를 1차적으로 하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는 질환을 판정받는다고 한다(물론 환우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약을 먹거나 수치가 크게 나쁘지 않아서 자연 치유되기를 기다리다가 도저히 증세가 나아지지 않으면 그제서야 소견서를 받고 큰 병원 혹은 류마티스 내과라는 생소한 병원에 가게되는데, 여기서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나면 '섬유근통'이라는 질병이란 소견서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크게 절망하게 된 것 같다. 안그래도 나는 지금 한참 경제활동을 해서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하고 뭘 해도 1분 1초가 아까운 시기인데 내가 강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몸이 나아질 때까지 기우제 지내듯 지내야만 한다고?
병원을 나와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처음 본 류마티스 내과 담당 교수는 '젊은 사람이 여길 왜...'라는 말을 남기려 말을 흐렸다. 물론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이런 질병을 얻게 된 사람도 적진 않지만 지금껏 지켜봐 온 환자들 연령대 통계를 보면 내가 생소하기도 했겠지. 그렇지만 뭔가 마음이 아려왔다. 그만큼 내가 마음과 몸에 병이 많이 들었다는 거구나.
그동안 스트레스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비롯하여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인해 20kg가까이 불어난 체중 때문에 내 몸 자체에 혐오감이 생겨 한동안 거울을 쳐다볼 수 없었다. 사라진 쇄골선과 거의 보름달처럼 붙어버린 얼굴 살들, 그리고 몸 구석구석에 붙어버린 지방덩어리들을 전부 떼어버릴 수 있다면 내 가진 것중에 일부를 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정도로 2021년을 보내니, 사람들 만나기도 두려워지고 가장 친하고 사랑하는 친구의 전시조차 가지 못해 나 혼자 1평 남짓한 방에서 갇힌 듯 지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1년을 송두리 째 날렸다. 물론 후반기 쯤 잊지 못할 소중한 사람, 연인이 내게 와준 것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었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에게 든 혐오감 때문에 제대로 연인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물론 이런 세상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겠냐만은,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좀 더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면 그 땐 더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2021년을 와신상담과 눈물로만 보냈냐 하면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제작년에 비해 아주 최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데이지 베이커리라는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을 내는데 성공했다. 다행히 나라는 사람의 아주 밑바닥을 봤음에도 작품을 사랑해주신 분들이 있었던 덕에 성공적으로 책도 냈고, 수익의 일부를 평소 마음이 많이 가서 담아두고 있었던 유기견 보호소에서 사료 1톤을 기부할 수 있었다.
또 이렇게 무사히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에는 나를 변함없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지인 분들과, 새로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신 분들, 멀리서 계속 힘이 되어주셨던 적지 않은 분들이 있었고 힘들 때마다 나를 붙잡아주던 주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콘티는 작년 초에 나왔었지만, 좀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완성해서 세상 밖으로 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아쉬움이 있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공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약 1년만에 쓰는 글이라 다소 두서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간 공백을 전부 설명하기엔 다소 입에 담기 힘든 일들도 많았고 굳이 내 아픔을 다시 떠올려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여기서 모든 것들을 묻어 두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재가동 해보려고 한다.
컴백이 늦었지만, 다시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으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