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노래는 모르지만 아는 척은 하고 싶어

by 김이밤


코인노래방의 벙어리


얼마 전, 통칭 인간 주크박스라 불리는 친구와 코인노래방에 갔다. 전주가 흐르자 친구는 비장한 표정으로 "키야, 이 노래 모르면 진짜 간첩이다. 이 노래 알지?"라며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난 처음 듣는 멜로디였다. 하지만 간첩 취급(?)을 당하기 싫었던 나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띵곡이지 이거~ 당연히 알지."


문제는 1절 후렴구가 끝날 때 터졌다. 친구가 감정에 심취해 노래를 부르다, 2절 도입부에서 "같이 부르자!"라며 나에게 마이크를 넘긴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가사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박자도 멜로디도 모르는 곡을 소화할 리 만무했다.


나는 "어... 어버버..." 하며 이상한 추임새만 넣다가 결국 몸만 좌우로 휘적휘적 흔들었다. 친구는 노래가 끊기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라리 처음에 "나 이거 몰라, 네가 불러줘"라고 했으면 친구의 깔끔한 독무대라도 건졌을 텐데. 얄팍한 자존심을 세우려다 노래도 망치고, 내 밑천까지 털린 완벽한 자멸이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노래방, 그리고 '있어빌리티'


이 쪽팔린 사건은 내 평소 화법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쿨한 인정'과 '비굴한 자학' 사이에서 길을 잃곤 했다. 지적을 받으면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우기거나, 반대로 분위기를 수습하려 "내가 원래 좀 멍청하잖아"라며 과하게 나를 깎아내렸다. 둘 다 건강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돌려 세상을 보면, 나처럼 노래도 모르면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야흐로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Ability)'의 시대다.


SNS를 보면 모두가 성공한 CEO 같고, 고뇌하는 철학자 같다. 대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맹이 없는 말을 하면서도 전문 용어나 영어를 섞어 쓰며 지적 권위를 세우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이건 좀 러프하게 잡고, 인사이트를 도출해서 딥다이브 해보자." 해석해 보면 "대충 훑어보고 자세히 좀 알아봐"라는 단순한 말인데, 굳이 현란한 포장지로 감싸서 자신의 빈약한 내공을 감추려 한다. 마치 내가 노래방에서 멜로디도 모르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던 것처럼, 그들 역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뒤처져 보이기 싫어 필사적으로 '아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게 '무능'으로 비칠까 두려운 세상. 그래서 우리는 본질을 키우기보다, 마이크 잡는 폼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짜 지혜라고. 화려한 껍데기는 언젠가 벗겨지기 마련이고, 멜로디를 모르는 노래는 결국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다.





질소과자보다는, 차라리 포장지 없는 알맹이가 되기로 했다


거품 낀 세상에서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팩트로 뼈를 맞았을 때는 "아야!" 하는 대신 "인정!"을 외치겠다. "아, 그러네. 네 말이 맞아. 내가 놓쳤어." 이 짧고 담백한 인정은 나를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메타인지가 정상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뢰의 증표다. 변명할 에너지를 아껴서, 차라리 그 단점을 고치는 데 쓰겠다.


둘째, '모른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어설픈 전문 용어로 나를 포장하지 않겠다.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눈을 빛내며 물어보겠다. "나 그거 처음 들어봐. 설명해 줄 수 있어?" 이 한마디는 무지의 고백이 아니라,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성장의 선언이다. 진짜 고수는 어려운 말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알아듣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셋째, 나를 깎아내리는 '가짜 겸손'도 멈추겠다. 웃자고 하는 농담이라도 "내가 멍청해서 그래" 같은 말로 나를 비하하지 않겠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남이 나를 존중해 주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남들에게 '있어 보이는'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있는 그대로' 당당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는 척하며 성장의 문을 닫아거는 바보가 되느니, 솔직하게 묻고 배우는 모지리가 되겠다. 비록 화려한 포장지는 없을지라도, 뜯어보면 꽤 알찬 알맹이가 꽉 차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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