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덧셈보다 뻴셈이 더 어렵다

by 김이밤

호구의 연애


스무 살 무렵의 연애를 생각해 보면, 연애라기보단 봉사 활동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적어도 그 당시 내 눈에는, 상대의 외모가 굉장히 예뻤다. 소위 말하는 ‘얼굴이 개연성’인 케이스. 갓 성인이 되어 이성의 외모에 면역력이 없던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이성적 판단 회로가 타버렸던 것 같다.


나는 자발적 '을(乙)'을 자처했다. 그녀가 약속 시간에 1시간을 늦어도 "준비하느라 늦었겠지"라며 화를 삭였고, 내 알바비가 그녀의 밥값과 커피값으로 증발해도 "예쁜 사람이랑 밥 먹는 비용"이라며 정신 승리했다. 친구들이 "야, 너 호구냐?"라고 혀를 찰 때마다 나는 귀를 막았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속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만약 내 여자친구의 얼굴이,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과 똑같이 생겼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가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그 순간, 그녀의 까칠한 말투, 배려 없는 태도,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는 무례함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얼굴이라는 사기급 필터를 지우자, 내가 붙들고 있던 감정의 실체가 사랑이 아니라 '예쁜 트로피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날 나는 마음속 지우개 하나로, 비로소 호구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가장 화려한 이유 하나를 지워라


그때의 경험은 내게 인간관계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 실험 도구 하나를 남겼다. 나는 이걸 '가치 소거법'이라 부른다.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그 대상이 가진 가장 빛나는 장점, 내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단 하나'를 지워보는 것이다.


이 냉정한 뺄셈은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그 이유가 '자상함' 혹은 '경제력'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제 머릿속에서 그 요소를 제거한다. 어느 날 그가 예민해지거나 빈털터리가 된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 곁을 지킬 수 있는가? 만약 그 요소가 사라지자마자 마음도 증발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조건'을 사랑했을 뿐이다.


이 소거법은 시야를 넓혀 사회를 바라볼 때 더 강력해진다. 우리는 종종 '우리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판단력을 상실한다. 국제 분쟁이나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는 필터를, 혹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약자'라는 라벨을 떼어내 보자.


"내 나라가 한 일이 아니어도,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한 말이 아니어도 정당한가?"


소속감이 주는 특혜를 지웠을 때, 우리는 맹목적인 합리화의 늪에서 빠져나와 조금 더 객관적인 정의를 마주할 수 있다.





‘더하기’보다 ‘뻬기’


가장 강력한 이유를 배제하고 다시 생각하라는 것. 그건 자신의 믿음을 지탱하던 가장 튼튼한 기둥을 내 손으로 뽑아보라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검증을 통과한 것들만이 진짜 내 삶의 보물이 된다. 기둥이 뽑힌 뒤에도 무너지지 않는 신념, 조건이 사라진 뒤에도 식지 않는 마음, 포장을 뜯어낸 뒤에도 여전히 옳은 가치야말로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할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가상의 지우개를 든다. 물건을 살 때 "이게 50% 세일을 안 해도 샀을까?"를 물어보고, 누군가를 지지할 때 "이 사람이 내 반대편 당적을 가졌어도 옳다고 했을까?"를 되물어본다.


화려한 이유들을 지워내고 남은 초라하지만 단단한 민낯. 그 가치가 나에게 확신을 준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선택한다. 변수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삶은, 더하기가 아니라 뺄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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