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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Feb 14. 2021

대화 덕후 - 대화는 내게 놀이

그저 더 잘 놀고 싶을 뿐이다.

일요일엔 역시 열려라 동물농장! 귀여운 포메라니안이 이찬종 선생님마저도 처음 보는 신박한 개인기를 선보였다. 등 뒤로 공을 굴려 다시 받고 다시 굴리고 다시 받는 공놀이. 모방에서 비롯된 행동도 아니며 누구 하나 가르치거나 훈련해서 얻을 수 없다.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이 필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처음 한 번을 가까스로 해내던 등 받기 공놀이는 점점 늘어나 연속 세 번까지도 가능했다. 오로지 그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고 그 행위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멈출 수 없으며, 자신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 그게 놀이라고 한다.


누군가 어린 날에 내게 나타나서 이런 충고이자 예언을 해주었다고 상상해본다.


"이봐.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말을 할 거야. 잘 귀담아들어.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화가 될 거야. 그러니 넌 앞으로 대화에 매진해야 해. 넌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하는 데 관심을 두게 될 거고, 그게 널 행복하게 하니까 넌 반드시 대화를 해야 하고, 늘 좋은 대화를 하고, 좋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염두하며 살아가라고!"


아마 청개구리 기질이 있던 나는 대화에 질색인 사람이 되었거나 대화에 강박관념을 지닌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나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대화를 강요하거나 대화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내게 대화가 가장 즐겁고도 질리지 않는 동시에 유의미한 놀이가 되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다. 



대화는 인생에서 수단에 가깝다.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수단,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한 설득 타협의 수단, 지식을 전파하려는 수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일상적인 필수재 같은 신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화의 바깥에는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나 목적이 존재한다. 



처음 내게도 대화는 수단이었다. 삶을 놓지 않으려는 수단,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삶에 정을 붙여보려던 수단,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던 수단, 온기와 사랑을 전하려는 수단, 자아를 확장하려는 수단, 세계를 이해하려는 수단, 어느덧 그 목적이 삶의 목적과 크게 달라질 게 없이 커져버렸다. 



내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도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에고적 목적이 서서히 사라졌다. (물론 어느 날은 나 또한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대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대화는 놀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을 잊을 만큼 수단 그 자체가 그 과정 전체가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화 자체가 내게 큰 활력과 기쁨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받아서 기쁜 것도 그 사람을 알게 돼서 기쁜 것보다도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터놓는 대화를 한 그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한 차원 나아가 대화에 몰입하여 서로의 속과 가치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교류하는 시간이 다른 어떤 놀이보다도 즐겁고 계속 반복하고 싶은 쾌락을 준다. 굳이 목적을 붙이자면 이제 내게 대화는 사랑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자 본질이기 때문에 숨 쉬는 것만큼 바다를 바라볼 때 기쁜 만큼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다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생각과 취향과 다른 문맥을 지닌 더 많은 여러 사람과 서로가 더 즐겁게 유의미하게 대화를 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내게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고 나의 세상들이 또 다른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 세운 거창한 목적의식 때문에 대화가 내게 놀이라는 걸 종종 잊고 괴로울 때가 있다. 그래 놀이는 하지 못해서 괴로울 게 없다. 하면 그저 즐거울 뿐. 더 잘 놀지 못했다고 후회하거나 아쉬울 일도 없다. 다음에 또 즐겁게 놀면 될 뿐.



클럽하우스에서 주제를 정해 모더레이터가 되어서 대화를 하고 있다. 내가 놀고 싶은 방식을 보여주고, 그것을 좋아해 주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사람들을 모으는 단계가 아닐까. 그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내가 더 잘 놀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지도 않고 무언가를 설득하고 싶지도 않고 부가적으로 얻으려는 마음도 없다. 그저 내가 잘 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클럽하우스에서 내가 경험한 대화 주제를 정리해본다.



-꿈 이야기(잠잘 때 꾸는 꿈) &초기 기억 : 만나고 싶던 사람을 만나 신비한 이야기를 들어 즐거웠다.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주제인데 다들 흥미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줘서 여기서도 내가 원하는 대화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겠구나 너무 기쁜 하루였다.


-사랑(연애)에 대하여: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주제, 남자 여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느냐, 개인적인 경험담,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 또 나와 닮고 공감할 수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 대화 자체보다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친구가 있어 프랑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프랑스에서는 애인이 생겨도 변화가 없기에 그런 고민을 하지조차 않는데 한국에서 고민을 들으며 신기했다는 의견을 들었다.

-가족/성공에 대하여: 인원이 다소 많아 개개인의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순 없었지만, 가족에 관련한 이야기부터 세대 차이, 가족과 개인의 성공을 동일시하는지,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사회적 성공의 의미, 사회적 인정과 인정 욕구, 경제적 자유에 관련해서, 주관적인 행복과 성공의 기준에 관련해서, 깊은 관계를 맺는 법과 거기서 오는 상처,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등등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참 좋았다. 



어떤 주제든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게 된다. 그게 참 좋다. 가끔은 내가 궁금했던 질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좁고 갇힌 나의 틀을 벗어나는 기분이 든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지란 막연한 생각을 존재론적으로 매시간 확인하는 기분이다. 서로의 안녕을 물으며 조금 더 다양한 주제로 다양하게 접근하여 그 사람의 총체적인 인생을 하나씩 확인해보고 싶다.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만.



자연스러움. 무언가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이라서 또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니 자연스럽게 생각하자는 그 말이 오늘 참 기억에 남는다. 약점이나 한계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억지로 메꾸거나 채워야 할 필요 없다고. 그게 필요한 날이 되면 또 자연스럽게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경청의 가치, 클럽 하우스를 처음 들어왔는데 잘 말하기보다는 잘 듣는 이의 가치가 이곳에서 더 중요하겠구나란 생각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고 싶고 듣고 싶은 사람은 적은데 다들 자신의 말을 하고 싶고 의견을 피력하고 싶고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한 편으로 10년 전까지도 한국에서는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서 문제이고 자신의 의견이나 말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아 국가적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그저 듣는 것과 경청은 다른 것이라서 경청에도 에너지와 적극적인 행위가 관여된다. 나도 평생 경청을 잘하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라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앞으로의 대화에서 더 많이 경청해야지. 적극적으로 부지런하게 진심을 다해 들어야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더 즐겁게 해야지. 다짐한다. 





앞으로 대화하고 싶은 주제 정리


-죽음&사후세계

-불안&불확실

-음악/영화/책/음식 취향

-내가 한 여행에 관해서

-인생에서 해 본 가장 미친짓/용기

-인류애에 대해서

-분노에 대해서

-삶을 통해 내가 확실히 배운 것

-융통성/고집/확신에 대해서

-바보가 된다는 것/취약성 고백


이야기 할 게 많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많고 무엇보다 듣고 싶은 게 많은 인생을 살고 싶다.

다른 사람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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