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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Feb 09. 2021

이건 좀 그래

그래! 그게 딱 내가 찾던 문장이야!

클럽하우스에서 3시간가량 대화를 마치고 생각했다. 이거 뭐지? 왜 이렇게 힘들지? 바싹 마른 입술은 물 한잔을 마셔도 타들어 갔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쉬고 싶으나 지금 무의식적으로 하는 설거지라도 하지 않으면 더 답답해질 것만 같아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청소를 하며 설거지를 끝내고 밥을 안치고 빨래를 돌리면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뭐지? 이 기분은 뭐야?




아침에 문득 오늘은 내 얘기가 하고 싶었다. 보통 타인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다짐하듯 선언한다. 나를 죽이자. 자아 비대증을 조심하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 내 욕구를 내려놓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하자. 그게 나 또한 즐거워지는 방법이지. 그렇지만 오늘은 꼭 내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한 번 해보자. 훅 들어가는 조금 더 깊은 고찰이 담긴 주제로 가능한 1:1로. 물론 잘 될지 모르겠지만.



‘소규모 딥토크-인생 이야기하실 분’, 어지간한 마음으로 손이 가지 않을 만한 제목을 세팅하고, 들어오는 분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오늘은 제 얘기도 하고 딥토크 좀 해보려고요. 결과적으로 제법 운이 나쁘지 않아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꽤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대화 지분이 조금 많았을지도. 적극적으로 묻기도 했다. 어제보다 확실히 조금 더 내가 원하던 그 대화의 형태와 내용에 가까워졌고 조금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물꼬가 터진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다. 즐거웠을지 유용했을지 그렇지만 걱정스럽거나 걸리는 거 역시 크게 없었다. 오히려 낮은 기대치보다는 제법 대화에 기꺼이 응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단순히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매우 피로했다. 원하는 대화를 주체적으로 해놓고도 말이다. 이런 적이 있었나? 이건 마치 억지로 만난 사람들과 표면적인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며 채워질 수 없는 공허감 속 피곤함이잖아. 왜 이러지.






L군이 오자마자 아직 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찝찝함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듣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L군의 1번 가설은 나의 조급함의 발동이었다.



-네가 원하는 그런 대화에는 시간이 필요한 거야. 단번에 그게 가능한 사람인지 아닌지 골라낼 수 없다고.


-나도 완전 바보가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만 이 찝찝함은 이제까지 경험을 통해서 보면 그런 대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애초에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나는 직관을 중시하잖아. 이건 뭔가 문제를 발견한 그런 느낌이라고. 시간이 지난다고 쌓인다고 과연 그게 생겨날까?


-그래? 그래도 조금은 원하는 결과나 방향을 얻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그런가.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명은 그런 사람을 발견하게 될 테니 조금 힘들더라도 적당히 조절해 가면서 계속해야 하는 건가?


-응 어쩌면 잘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꼭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거지? 네 말대로 여전히 매사에 조급한 건가.






그렇게 완전히 무언가 해소되지 못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L군이 말했다.


-대화 자체가 에너지를 쓰는 일이잖아. 너도 모르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거지. 휴식이 필요하다고. 더군다나 목소리만 들으면서 대화한다는 건 엄청 힘든 일이야. 피드백이라는 건 대부분 얼굴과 몸짓에서 나오잖아.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상대방 반응을 살피는 데 더 에너지를 써야 해.


-그래! 그 생각도 했어.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의 수준을 만들려면 절대적으로 오프라인이어야만 해! 최소한 적어도 화상 대화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독서 모임처럼.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절실하게 L군의 손을 꽉 잡았다.


-하나의 플랫폼에 너무 올인하는 거 아니야? 너의 목적에 맞게 여러 플랫폼을 수단으로 활용해야지.


-클럽하우스를 처음 접했을 때, 대화하고 싶을 때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여럿이 또 한 명과 원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내가 만들려고 하는 클럽이 잘 굴러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실험을 하게 된 거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가 드는 생각은 이건 이렇게 쓰기 최적화된 플랫폼은 아니라는 점이지. 여러 사람과 내가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조금 더 가벼운 수준으로 정보를 얻고 업계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얻고 부담 없이 다방면으로 대화하기에 가장 좋고 재밌는 플랫폼이지. 그런데도 내가 이걸 강요하듯이 계속 여기서 밀어붙이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렇다고 그 플랫폼에 최적화된 방식에 맞춰 이용했다가는 원하는 사람들을 알아볼 기회가 생기지도 않을 거 같다는 거지? 듣다 보니 ‘이건 좀 그래.’하는 건가?


-오오오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짐승처럼 포효하며 소리를 질렀다.




-오 맞아!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깨달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다. 완전 유레카야! 역시 넌 김혜진 전문가야. 지금 내가 느끼는 찝찝함과 오묘함의 정체를 딱 다섯 글자로 정리해 버리다니. 맞아 바로 그거야!! 한마디로 이.건.좀.그.래.라는 기분이라고! 절대 이래서는 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없겠어. 네 말대로 오프라인이 아니면 불가능해. 아니 다른 좋은 방법이 있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거지.



-더군다나 네가 이렇게 소진되고 힘들다면 더더욱 아닌 거겠지.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 클럽하우스는 좀 더 가볍게 가끔 내키는 대로 이어나가며 이렇게 오늘처럼 생각도 정리하고 영감도 얻고 하는 용도로 생각하고.


-맞아, 맞아. 안 그래도 한눈팔지 말고 글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다시 했어. 차라리 글로 적으면 거기에 관심 있는 누군가가 생기고, 그럼 나를 찾고 그게 더 적중률이 높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너무 세상에 직접적으로 갈구하나. 너도 알잖아.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히 아는 건 중요하지만, 세상에 그걸 요구하면 세상은 절대 그걸 주지 않는다고.


-너무 본론으로 들어갔다는 거지?


-응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본론부터 말하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있더라고. 그런데 그럴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드는 거야. 오늘 아침에 유튜브를 보다가 어떤 분이 자기 꿈이 책을 만드는 거였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이런 말을 해주셨데. “네 이야기가 필요해지면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까?” 그 말이 일리가 있어서 일단 책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대신 주변의 권유로 유튜브를 시작했데. 그리고 3개월이 지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결국은 책이 나온 거지. 그분은 초기에 단 한 번도 내가 이걸 책 만들려고 한다고 말하거나 생각하진 않았거든. 마음속에 꿈을 품고 있되 세상에 요구하거나 내비치진 않는 거지. 지금 내가 너무 요구해서 오히려 문제 아닐까. 이거야말로 조급증이군.


-으음. 왜 부자가 되려면 당장은 근로소득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거잖아. 결국 시간을 환산해 돈으로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건 돈이 돈을 버는 방식처럼. 너의 자산은 글인 거네.


-오 맞아! 지금 내가 내 말에 관심도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시스템 안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푼돈밖에 못 버는 거야. 내 말에 관심 있는 사람을 알아서 찾아주는 시스템이 필요해! 그게 역시 나에겐 글인 것 같아.






그 대화를 마치고 나자 실체를 깨닫게 된 기분이 들었다. 안개가 걷히듯 해가 뜨고 맑아진 하늘에 사이다를 두 잔 마셔 속이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그래. 세상은 순리대로 살아야 해. 외부 의도 흐름에 맞서서는 좋을 게 없다고! 잠시 고양이가 레이저에 한눈을 팔 듯 새롭고 강렬한 자극의 광기에 휩싸여 발을 담그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나 보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슬픈 발라드에 맞춰 방정맞게 춤을 추며 느꼈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그래 이 느낌이 맞는 거야.


그래서 결론은 클럽하우스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제가 찾는 그 곳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매력적입니다 저도 그 매력에 가끔씩 빠져볼까 합니다) 그럴 시간에 글이나 한 자 더 쓰기로





마지막 대화는 이러했습니다.


-너는 내 재능을 믿어? 글쓰기 재능 말이야.

-그럼 믿지. 


-다른 사람의 인정은 상관없지만, 너의 인정은 매우 중요해.

-완전 믿어. 


-나는 저평가 우량주야! 하하하 너는 내게 몰빵한 멍청이 투자자고! 나는 과연 우량주일까? 페니 조각일까?

-난 최장기 투자자고 투자계의 장인이지. 


-좋아! 난 내가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해. 세공이 영원히 안 되서 돌덩이로 남진 않겠지?

-아주 강제로 여기저기 굴려서 저절로 세공이 되게 만들어주지.


-30년만 기다려. 나만 믿어! 말년운이 좋은 게 아니잖아.

-그래 너만 믿는다. 완전 놀고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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