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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Feb 08. 2021

클럽하우스 입성기

처음 참여하게 된 클럽하우스의 대화방에서 한창 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제법 이른 시간, 나와 한 학생을 제외한 상당수가 미국에 거주하는 디자이너로 보였다. 처음 미국에 건너갈 땐 한국보다 미국인들이 개인적인 주제나 정보에 관해 이야기하길 꺼려서 신경이 쓰였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신의 정보도 잘 말하더라는 놀라움. 그때 강단 있는 어조에 명확한 발음을 지닌 한 사람이 덧붙였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관용적인 표현에 가까워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후 내내 그 이야기가 공명한다. 일단 대화가 되려면 자신을 해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다른 표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라는 표현만은 확실하다.



오프라인 세상과 마찬가지로 클럽하우스라는 핫하고 막 태동한 음성 기반의 소셜 SNS 클럽하우스에서도 마구 관심을 수집하고 인맥을 넓어 가고 싶은 욕망을 실현함을 동시에 공격을 당하지 않을거라는 믿음, 즉 최소한의 방어선 구축은 필요하다. 또 호기심이라든가 소속감의 충동을 억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적당선으로 타협하며 초원을 달리듯 반경 범위를 넓어갈 확률이 크다.



대부분의 SNS가 그러하듯 클럽하우스 또한 지인 소개 방식에 의존한다. 손이 덜 가면서도 제법 효율적인데다가 뭔가 특권이라도 얻은 듯 체류 시간을 늘리고 싶어진다. 어릴 때부터 보증을 절대 서주면 안 된다를 누누히 들어왔는데 어쩐 일인지 인맥이란 분야에서는 고전적인 방법이 여전히 통한다. 보증해주는 사람이 많을 수록 신용도는 높아지고, 이미 다른 SNS에서 많은 팔로우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이곳에서의 신용도도 1등급이 된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믿을만하고 괜찮은 사람인지 프로필을 만드는 데 있다. 다른 SNS와 마찬가지로 (본명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 클럽하우스의 특성상 더더욱) 직업을 시작으로 타인에게 어필이 될만한 이력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채널이나 사업, 마지막으로 취향이 적혀 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원하는 대화를 원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면 일단 애써야 하는 것이다.



내게 관심있는 사람은 알 수도 있지만 나는 궁극적으로 '본질대화클럽'이라는 소규모 공동체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한다. 별다른 목적 없이 수단이 아닌 대화 그 자체의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을 모으려고 한다. 그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알고 나 자신을 알고 인생을 즐겁게 하는 대화가 무엇인지 알고 그 시간을 늘리는 데 가치를 지닌 사람들(대화에 인생을 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내 꿈이다.
(오래 생각해보았는데 이보다 구체적이고 그럴듯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클럽하우스가 등장했을 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내가 꿈꾸는 이 꿈을 실체화 혹은 실험하는데 꽤 적절한 플랫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뭣도 모르고 일단 가입 신청을 했는데 초대장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잊고 있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도움으로 대기명단에서 빠진 걸 알고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2시간 정도 이 앱을 체험해 본 후로, 아마 어쩌면 여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다소 회의론적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느끼기에 그곳은 아직 다른 플랫폼과 형식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이전 플랫폼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팔로우를 맺고 대화를 아니 구독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그들은 여기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빠르게 계산하고 있다), 원래 지닌 영향력을 넓이기 위한 인플루언서들과 그 인플루언서를 따르는 배제되고 싶지 않은 팬들(나도 물론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여기서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을 지 알 수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



한국어 대화방에서는 아직은 바삐 인사 나누기, 클럽하우스에 관한 이야기, 지인들과의 일상적인 대화가 전부이다. 물론 구체적인 관심과 토픽의 대화방에서 정보를 나누기는 더 쉬울 것이다. 유용함, 그리고 그런 방에서 연사는 정해져있고 대부분은 청자가 될 것이다. 편집되지 않는 팟캐스트와 다를 바 없이 이곳에서 우연과 운명에 기대어 내가 만들고자 하는 클럽에 기꺼이 동참할 동지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지금으로서 그럴 확률이 꽤 낮아보인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조금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 이 곳으로 초대할 수 있고, 꽤 유용하게 굴러가는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이제까지 어떤 목적 의식을 지니고 SNS를 가입한 적이 없었다. 나역시 궁금함과 호기심에 시작했고, 재미를 느끼면 남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가끔은 팔로워나 좋아요 수에 웃고 인플루언서가 되길 꿈꾸거나 영향력이 강한 사람을 시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바라는 건 단 한가지이다. 이 플랫폼에서 내가 꿈꾸는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을까?



절망보단 희망이 어려우니, 희망을 지니고 해보는 수밖에



이 글을 여기까지 적고 모더레이터로 3시간 가량 대화를 하다가 나왔는데,
어쩌면 내 생각보다 내 예상보다 더 재밌는 곳일지도
물론, 그곳에 본질대화클럽이 차려질지와는 별개로 말이죠.




P.S. 클럽하우스에서 저를 찾고 싶다면 고물 혹은 본질대화클럽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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