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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pr 16. 2021

목적은 분명한 동시에 없다.



본질대화리포트

고물 x 라라
클럽의 목적은 명확해요

2020.12.17 대화 중 발췌




'본질'이란 단어를 좋아한다던 한 남자는 내게 '본질대화클럽'이 무엇인지 관해 물었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람을 알기 위해 온전히 대화하는 클럽'이라 간단히 대답했다.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는 상황이네요.?' 거기에는 악의라고는 요만큼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모르는 요리와 식당 이야기를 한참 하며 조만간 만나자고 말했다. 나는 그곳을 조용히 떠났다.


종종 되묻는다. 그게 꼭 필요한 거냐고? 타인들은 의식하지 않은 채 내가 생각하는 '본질대화'를 나누고 네가 바라는 유대감을 쌓고 내가 추구하는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니냐고. 타인이 될 수 있는 이상 나는 알 수 없다. 이게 소속감 결핍 혹은 외로운 자의 열등감 해소에 지나지 않는지를.


내가 모르는 사이 나만 빼고 다른 이들은 모두 이러한 충만감과 만족감을 겪으며 이런 대화를 하며 살아가는지, 그렇다면 이 클럽을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 종교가 있고, 신점을 보러 가고, 타로를 보고,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말하는 그런 '본질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아닐까?



"우리 이야기할래요?"


"왜죠?"


"당신을 알고 싶으니까요. 또 당신이 나를 알길 바라니까요.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사랑하고 싶거든요."


이 대화클럽의 목적은 분명하죠.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저게 다예요.


실제적인 방법도 당신이 어떻게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무엇이든 확장하고 변모할 수 있죠. 목적이 변하지 않는 전제하에서는 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해요. 원한다면 작업물을 공유할 수도 있고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죠. 어쩌면 사업을 하거나 협업을 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목적이 아니에요. 클럽의 상호작용이나 결과일 뿐이죠.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달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염치없는 일이 되어버렸어요. 시간은 자본으로 치환되거든요. 아무 목적이나 효용 없이 구체적인 성과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시간을 내달라는 건 양심 없는 일이 되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적어도 스마트폰을 끼고 있거나 소재라도 하나 필요해요. 둘만 남아 서로를 바라보며 거짓 없이 상대방에게 가닿는 건 너무 어색하고 바보 같은 일이니까 말이죠. 게다가 두 사람이 애인도 부부도 가족도 아니라면 더더욱 말이죠.




나는 오랜 기간 인간이 소외되었단 걸 알았다. 처음에는 나 혼자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자라고 괴팍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득한 아웃사이더라 홀로 외로운 거로 생각했다. 상담을 받아보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절대로 상담으로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잘해야 고객과 손님 사이 일시적인 비즈니스 관계였다. 아무리 좋은 대화를 해도 공허했다. 운이 좋게도 여전히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친구라는 개념이 남아있었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다들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과는 일만 하지 친구가 될 생각 따윈 버리라고 했다. 예외는 있지만 그걸 믿는 바보는 삶이 고달파진다고.


인생이 별거 없는 걸 알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 중 평범한 사람 또한 예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아주 가까이에서 집중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면 한 피조물이 지루하고 별거 없는 삶을 살 리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많은 우연과 그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살아 숨 쉬는 생명이고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효용과 자본과 상관없이 그저 한 개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서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들. 이해관계 없이도 무용해도 기꺼이 노력을 들여 누군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 모두 겉으로는 그것을 원한다고 해놓고 그 순간이 오면 발을 빼거나 변명했다. 시간이 없다고, 그건 중요치 않다고. 그러나 내겐 그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클럽명은 직관적이다. 이름을 듣는 순간 당신은 알 수 있다. 나도 저걸 원해.라고. 내 글을 몇 개 더 읽고 나서 직관적으로 당신이 느끼는 그 모습이 클럽의 전부이다. 애석하게도 내가 느끼는 이 중요함과 클럽의 가치는 고작 이런 글들로 대체될 뿐이다. 구체적인 목적 같은 건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 클럽이 잘 작동하냐고 묻는다면 또 당신에게 어떤 혜택을 주냐고 묻는다면 일말의 존재가치도 없다.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메시지로 읽힌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시스템과 싸울 생각은 없고 세상을 바꿀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대로 손 놓고 당하고 싶진 않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개인은 더욱더 하찮게 될 게 뻔하고 단순화되고 도구화되겠지만 작은 소수의 손을 붙잡고 굳이 아날로그식으로 눈을 맞추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생명을 지닌 특별한 사람이며 서로가 가진 고유의 별거 아닌 인생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고 싶다





예술 비평가인 로버트 휴즈가 명명한 것처럼 ‘오락산업’이란 괴물이지요. 요즘 미디어는 유명인, 뜬소문, 스캔들 외에는 별로 보여주는 게 없잖아요. 또, 우리가 우리 자신을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도 왜곡되거나 변조되어서 실제로 사는 삶은 잊혀버렸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충격적인 폭력물과 얼간이 같은 도피주의자의 환상물뿐이며, 뒤에 숨어서 이 모든 것을 몰아가는 힘은 바로 돈이지요. 사람들은 얼간이처럼 다루어지고요.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원하도록 조작된 소비자이며 잘 속아 넘어가는 바보에 불과하지요. 이것을 자본주의의 승리라 부를 수도 있겠지요. 또는 자유 시장경제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 안에는 실제적인 미국인의 삶을 재현할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이 체제에 약간의 흠집이라도 내려는 것이었어요. 소위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요. 우리 모두는 강렬한 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고, 여러 가지로 기억할 만한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작가란 무엇인가, 폴 오스터 인터뷰, 169-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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