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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y 03. 2021

긴장과 멋의 반비례 관계

멋은 곧 여유이다.

새 학기가 싫었다. 매일 오던 학교 비슷한 일과가 되풀이되어도,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는 또다시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새로움을 만나면 긴장과 경계로 잔뜩 움츠러들었다. 가만히 앉아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질 시간을 조용히 기다렸다. 어깨는 굽고 발은 비비 꼬이고 어깨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미어캣이 되어 작은 소음에 놀라 주위를 살피다가 별일 아니구나 안심하길 여러 차례. 이런 내가 멋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멋은 곧 여유이다. 생김새도 다르고 스타일도 통일할 수 없지만, 눈길이 가는 사람의 분위기에는 하나같이 여유가 흘렀다. 그들은 어떤 시공간에서도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거나 엇박자 없이 자연스러운 태가 났다. 편안하고 이완된 공기가 안으로 밖으로 막힘없이 순환했다. 그 공간이 누구의 소유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이 그 공간의 주인이 되었다.


처음 떠난 배낭여행에서 만난 잔뼈 굵은 여행자는 네 번쯤 마주친 후 내게 속삭였다.
‘비밀 하나를 알려줄게. 친구 만드는 비법이야.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으면 돼. 외로워 보이지 않는 거지. 혼자서도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친구가 되고 싶어져.’ 그날 이후 혼자서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갯짓으로 리듬을 맞추게 되었다. 홀로 가만히 잘 지내다가도 작고 사소한 변화는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해서 다시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공간과 낯을 적당히 가렸으면 했다. 겁 없이 들판을 뛰어노는 아이처럼 세상의 주인이자 귀한 손님이 되었으면 했다.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람, 그렇게 멋져지고 싶었다. 혼자 있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공간의 변화 속에서도 단절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평온의 추가 무거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의식적인 연습과 노력에도 여전히 새로운 장소에 가면, 긴장으로 근육이 뭉치고 끊임없이 눈치를 보느라 마음이 바쁘다. 어색한 표정, 손과 발이 신호라도 끊긴 듯, 걸음새마저 엉성하다. 공간에서 안정된 감각을 느끼는 일은 극히 일부다. 시간을 들여 공간과 얼굴을 트고도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다시 그 공간과 거리를 두고 낯을 가린다. 오랜 시간 공들이지 않더라도 원래 알던 사람처럼, 익숙한 착시를 일으키는 비교적 편안한 공간을 찾아내면 애정을 깊이 품을 수밖에 없다. 공간이 주는 높은 긴장도는 언제나 공간을 공들여 찾고 소중히 여길 마땅한 이유를 준다.


언젠가 집에 불쑥 놀러 온 L의 친구를 마주하고는 당혹감과 신기함에 어쩔 줄 몰랐던 날이 있었다. 그는 처음 본 나와 처음 방문한 나의 보금자리에도 전혀 낯을 가리지 않았다. 마치 본인의 집처럼 편안하게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고래 인형을 만져보고 이것저것 호기심을 드러내며 탐색을 시작했다. 그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질문을 하는 통에 나는 평정심을 잃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내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 집의 주인처럼 보였다.


가끔 긴장된 나를 알아챌 때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공간의 변화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 편안히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공간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비교적 낯을 덜 가리게 되고 불편한 사람 앞에서도 묵묵히 일을 처리했던 것처럼 새로운 공간에서도 잠깐은 당황스럽고 서먹하더라도 서서히 나의 페이스를 찾아가는 게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은 딱 그만큼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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