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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n 15. 2022

백마 탄 왕자




수업은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로맨스 장르 속 플롯을 심화적으로 설명하며, 마지막 예시로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을 들었다. ‘이 드라마는 특수한 타이밍에 운 좋게 만들어진 작품이며 더 이상 이런 작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일반적인 남녀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이 뒤바뀌어 있기 때문이죠.’


작년에는 그 한 해 새로 알게 된 친구가 ‘Mi Cubano’의 시놉시스를 부탁했다. 술을 마시며 그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어투로 영상화나 웹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지만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추어인 나를 걱정하듯이 오래 걸리거나 성과가 없을 수도 있으니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웃으며 그런 제안이 아니었으며 어차피 아무것도 안 했을 거고, 어떤 기대도 없다고 말했다.


몇 번은 Mi Cubano가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다. 영화관에서 상영되거나 한국 드라마로 편성되는 걸 상상하긴 어려웠지만, 넷플릭스 쪽은 조금 더 개연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 같기도 하고, 가끔은 실제로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지 걱정스럽기도 해서, 어쨌든 이 상상을 혼자 간직했다.


창작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된 건 Mi Cubano 때문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진지하게 시도한 적 역시 없다. 나의 한계와 단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글을 이제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궁금했다. 상업적인 글, 대중적인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의 에너지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별 기대도 뚜렷한 목적도 없이 새로운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가장 끌리고 타이밍이 맞았던 강사님의 수업을 골랐다.


내 안에 이야기 소재가 많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Mi Cubano를 떠올리며 수업에 대입했다. 강사님은 발표도 과제도 자율적으로 참여하라고 했기 때문에 어떠한 압박이나 의무감도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궁금하긴 했다.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진짜 있는 건지, 이게 상업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 내가 아닌 프로 작가가 각색한다면 사람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줄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 될까?



수업을 들으며 그동안은 어떤 실마리나 단서라도 얻은 것처럼 꽤나 신나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재미난 놀이라도 하듯이, 실화나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나 시나리오로 변모될 Mi Cubano를 꿈꾸며 즐거웠다. 그 이야기는 Stella도 Ale도 벗어나서 뚜렷한 메시지를 갖는 원형적 스토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제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깨닫게 되었다. 이건 죽어도 한국에서 절대 팔릴 수 없는 스토리라는 걸 최소한 로맨스 장르로는 글러먹었다. 어떻게 바꾸어도 소용없다. 이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를 충족시켜주거나 로망을 선사할 수 없다. 결핍을 채워주는 선물을 줄 수도 없다.






아무리 이 이야기를 뜯어고쳐보아도 놀랍게도 제1주인공은 Ale가 아니라 Stella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선포도 이별의 결정도 모두 Stella에게 달려있었다. 1주인공도 2주인공도 성장을 했지만 세상의 관점에서 눈에 띄게 확실히 성장한 건 2 주인공 뿐이다. 사람들은 1주인공의 성장을 성장이라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추락이라 여길 법했다. 왕자가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 건 전형적인 신데렐라형 현대 멜로 로맨스 플롯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백마 탄 왕자님은 놀랍게도 나였다. 절대 알레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내게 내공이 쌓이고 연륜이 깊어진다 한들 알레를 매력적으로 그려도 백마 탄 왕자님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백마 탄 왕자님 따윈 한국에서 통할리가 없었다.


내가 백마 탄 왕자라고?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걸 이제까지 몰랐지? 

충격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백마 탄 왕자는 모든 걸 지니고 있다. 외모도 능력도 재력도 신분도 명예도. 공주를 신분 상승시켜준다. 아무 대가도 조건도 없이. 백마 탄 왕자는 공주를 만날 당시 모든 게 갖추어져 있고 성장 같은 건 필요치 않다. 그는 완성형 캐릭터이다. 단지 시련이 닥치면 사건이 벌어지고 이겨낸다.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처럼 공주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신데렐라에서 왕자도 라푼젤 속 왕자도 어떤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지도 큰 서사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 속에서 중요한 건 신데렐라와 라푼젤의 성장 혹은 변화, 성공뿐이다. 인어공주의 왕자는 인어공주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비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방치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비극이다.


물론 요새 현대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들은 싸가지가 없고 오만하다. 공주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배우는 인간적인 면모를 이끌어내는 성장을 이룩하며 조금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긴 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고전 왕자의 속성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나의 비극은 백마 탄 왕자 역할을 부여받고도 공주처럼 사랑을 받고자 했다. 공주처럼 성장기를 보여주려는데서 시작했다. 이 백마 탄 왕자는 백마도 없고 성도 없고 권력도 없고 돈도 없어서 자신이 왕자 일 것이라 꿈에도 상상 못했기 때문이다. 왕자는 언제나 진실한 친구나 연인이 되고 싶었다. 구원자나 지원자나 어떤 발판이나 부스터, 도구 같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가끔 Mi Cubano를 읽고 ‘나쁜 남자’ 혹은 ‘날 덜 사랑했던 남자’에게 고통받거나 상처받은 과거가 떠오른다며 날 위로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못해 벙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쓴 적이 없는데.. 하리다님의 남편 분이 내게 물었다. ‘고물이는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웃으며 대답했지만, 나는 왜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갖는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렇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사고방식과 결정체계는 백마 탄 왕자에 완전히 부합되어 내가 백마 탄 왕자인지도 모른 채 백마 탄 왕자 역할을 수행하게 만들었다. 누가 내게 백마 탄 왕자 역할을 하라 네가 구원자다라고 말했으면 난 뭔소리냐고 도망갔을 것이고, 그 일이 위대하고 특별하다고 믿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캐릭터 파악을 완전히 잘못한 채로 그 이야기를 썼다. 그나마 그 이야기는 에세이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적적으로 닿을 수 있었을 뿐이다.




‘너 정도면 더 괜찮은 사람 만날 수 있는데 왜 그런 사람 만나?’ 가끔 진정으로 날 아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 반발심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게 사랑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묻는지 몰랐다. 생각해보면 첫사랑을 제외하고 오래 만난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게 늘 백마 탄 왕자 역할을 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 같은 건 고려 범위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늘 가난하고 능력 없는 남자만 만난다고 오빠는 내가 가난한 나라만 여행 간다고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씩 잔소리했다. 한 때는 통제당하고 싶지 않은 반발심이나 자기방어 기제로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건가 의심한 적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온갖 공주가 등장하는 동화는 좋아했어도 어렸을 적부터 단 한 번도 백마 탄 왕자를 만나기를 꿈꾸거나 갈망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독립적이거나 오만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이 백마 탄 왕자였기 때문이었다. 학습하지 않고도 내 몸과 운명과 삶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공주를 만나면 그들을 꿈꾸게 했다. 그들의 잠재력이 펼쳐지고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너는 더 좋은 사람이고 더 나은 사람이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그러나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었다. 공주가 왕자에게 집착하거나 구속을 시작하면 떠났다. 공주가 왕자가 해준 모든 것에 대해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게 되면 그들을 떠났다.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는 공주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대충 퉁 쳐 버리지만, 불멸의 사랑을 믿지 않는 현대에는 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시작점까지만 그린다. 백마 탄 왕자는 백마를 타고 공주를 구해줄 때나 아름답고 멋지지, 함께 지지고 볶고 살며 그냥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전락하며 모든 매력이 다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역할이 끝났으면 미련 없이 멋지게 사라져야 마음 속 여운이라도 남겨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질척대고 미련을 지니고 영원하고 안전한 관계를 꿈꾸며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사랑받고자 꿈꿨으니 고통과 아픔만이 남을 수 밖에.




철학관에서는 내게 결혼을 늦게 하길 권했다.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되어 남편과 가족을 먹여 살릴 팔자라고 했다. 휴먼디자인 속 나의 친밀감의 역할은 하룻밤 연인이다. 잊지 못하고 기억에 남는 단지 쾌락만이 아닌 무언가 의미가 될 수 있는 하룻밤을 선사하는 게 선이고, 매일 밤을 함께 보내고 싶어 누군가 한 사람을 잡고 놔주지 않는 그 평범한 관계가 내겐 악이 되었다.




감정이 격할 때는 알레를 의심하기도 했다. '나를 이용했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나?' 나는 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와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정되고 내 자신인 순간엔 한 번도 그에게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의 곁에 남아줄 용기와 능력이 없어서 미안했다. 그를 놓아버렸기에 결국 내가 해준 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선택의 시절 만났던 모든 이는 그 인연을 놓아주라고 말했다. 내가 용기가 없어서 비겁해서 그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인정했다. 현실에 졌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그게 왕자의 역할이었다. 세상이 내게 알려주려 했을 뿐이다. 역할이 끝났으니 공주가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자연히 놓아주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거, 그게 내 역할이었다.. 왕자는 공주에게 집착하거나 소유욕을 주장해서도 대가를 바라서도 안 된다.



그 일은 누구의 머리나 생각으로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우연과 몸 운명이 만든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내 인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삶에 모든 걸 맡기고 운명을 따라가 본 시작이었다. 그 이야기 속 나의 역할의 원형은 여지없이 백마 탄 왕자였다.

나의 찌질함과 소심함, 불안정함, 약점과 단점 한계와 고뇌를 속속들이 파악하기에 캐릭터와 역할을 부정해왔다. 이렇게 흔들리고 불안전하고 변덕스러운 왕자가 있다고? 감당도 되지 않고 감당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골똘히 잘 생각해보니 언제나 내 역할은 대가 없이 사랑을 주고 그의 잠재성을 이끌어내며 용기를 북돋는 것이었다. 그 사랑엔 말뿐 아닌 현실적인 대책이 함께했다. 언제나 우리의 관계의 완성보다는 그 자신, 개인의 완성에 더 가치를 두었다. 공주는 한 사람일 수 없다. 왕자가 필요한 건 순간일 뿐이다. 왕자는 임무를 마치면 공주의 일상 밖으로 쿨하게 나가야 한다.


왕자가 백마에서 내려온 후 맞이하는 현실 속 평범하고 고통받는 인간으로서의 일상은 공주와 하등 관련이 없다. 그건 오롯이 왕자의 몫이며 무대 밖의 일을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우뚝 서는 게 왕자의 미덕이다. L을 동반자로 선택한 이유는 L 역시 백마 탄 왕자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 내게 그 역할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것 역시 무의식적 선택이었다). 일상 속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지인에게 나는 결코 백마 탄 왕자 역할을 해준 적 없으며 그들 역시 백마 탄 왕자를 내게 원하지도 않았다. (백마 탄 왕자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떠난 이도 여럿 된다) 그들을 만난 건 천운이다.



이 역할이 싫다고 징징되거나 무를 수가 없다. 생각하기에도 오그라들고,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하찮고 평범하고 약한 사람이라 외치고 파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가 내게 부여한 역할을 바꿔줄까? 


…그러니 이게 내 운명이라면, 공주가 되려하지 않겠다. 기꺼이 그 순간이 다시 오면, 백마 탄 왕자가 되겠다. 이번엔 내가 백마 탄 왕자라는 걸 자각하고, 이것의 끝에 기꺼이 기뻐하면서.



이거 알게 하려고 글쓰기 강좌를 듣게 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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