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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Feb 25. 2023

대안학교 교사를 마치며

가로등 아래의 소년들은 자라서

내가 사랑한 소년들은 다행히 아무도 자살하지 않고 잘 자라났다.

누군가는 군대를 가고 누군가는 대학을 가고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찾아 모두들 성공적으로 나를 떠나갔다.

아들 많았던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나도 그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며 내가 줄 수 있는 선생님으로서의 사랑을 쏟아부으며 지나가버린 나의 20대 후반 5년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아니, 오히려 눈부시게 찬란한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부디 덜 상처받고 덜 아프며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격려와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세상이 그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따뜻하고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는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슬프고 외롭고 아팠는지 곁에서 보아서 그렇다. 그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다. 이제는 세상이 그 소년들에게 조금만 친절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공평한 거 아닐까.


아이들의 끔찍한 삶 속에 뛰어드는 건 나 역시 무서웠고 두려웠고 때로는 내가 돌보는 이 아이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분명 힘들었고 괴로웠다.


하지만 그래도 곁에 아이들이 있어서 그 시간들은 아름다웠다. 사실 진흙탕 속에 아이들과 있던 셈이었지만 우리는 적어도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사회에서 배척받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우린 행복하고 즐거웠다. 속상함의 깊이는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깊고 날카롭다는 걸 알았다.  결국 사람을 키우고 바꾸고 자라게 하는 건 관심과 사랑을 쏟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학교의 문을 닫고 드림팀 같던 동료교사들도 떠나갔다. 나 역시 이제는 조금은 막막하지만 나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나게 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동료,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부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사회초년생들에게 따뜻하고 싶다. 그 아이들도 나의 아이들과 같은 아이들이니까. 돈이니 효율이니 그런 거 말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세상을 함께 헤매고 헤쳐나가며 살아가는 그런 친구처럼.


삶이라는 항해에서 나도, 나의 아이들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부디 서로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로 함께 만나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아픔은 있더라도 찬란하고 눈부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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