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호하는 부모들의 희망사항
요즘들어 센터에 찾아오는 아이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많은 지원과 쉼터들이 나타나 사각지대 아이들을 보던 우리센터에 더 이상 찾아오는 위기, 위험, 가출상태의 사각지대 아이들이 많지 않다. 대신 요즘에는 새로운 신인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보는 이 신인류의 특징은 너무나, 너무나 유약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17살의 나이에 사회적 시선이 두렵다며 버스를 타고 센터를 일주일에 한번을 못 온다.
이들은 못할까봐 무섭다며 25살이 넘어도 편의점 아르바이트 한번을 '지원'도 할 생각이 없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미술을 포기하겠다는 이미 성인인 21살 아이가 있고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다며 합격한 일자리를 가지 않는다.
이들은 지능의 문제도, 신체적 장애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주 정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나, 너무나 쉽게 포기한다. 나 자신이 '요즘 것들은 나약해~'라고 말하는 꼰대가 되어 버린 것만 같지만, 정말 불과 3,4년전 아이들에 비해 이 아이들은 너무나 유약하다. 내가 답답한건, 이들이 '시도해보고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작도 안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문제인 것은,
'이들이 너무나 유약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들'
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은 험하고 위험해서 사랑하는 내 새끼를 세상에 내놓기를 두려워한다. 언제까지?
신인류들이 20살이 넘고, 20대 중반이 다 넘도록.
이 부모들은 자신들의 유약한 자식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놀고, 집안에 둔다.'
교사들은 이것을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상처가 있어서...','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 부모들의 진심은
'내 아이가 부끄러워서 세상에 내놓기에 자존심 상해요'
'내 아이에게 신경쓰기 귀찮아요'로 들린다.
그 아이의 상처는 이미 10년이나 전 초등학생 때 겪은 왕따이고, 이미 수많은 상담과 정신과 진료로 다 치료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부모는 왜인지 계속 아이가 '상처받은 불쌍한 나의 아이'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나보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아이는 정상이다. 오히려 '부모의 지각'이 다르다. 아이는 답답하다며 세상에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가 그 아이들을 가로막는다.
나는 요즘 이런 '이상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센터에서 굉장히 많이 본다.
이전에는 너무나 방치하는 부모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면, 요즘의 아이들은 너무나 과보호하는 부모로 인해 아이가 성장을 할 수가 없다.
이전에 교사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고 돕고 상처받은 마음을 채워주면 되었다면, 지금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열심히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중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을 부모들은 지속적으로 묵살하고,
'너희들은 문제있는 애들 봐주는 곳이잖아. 내 아이는 문제가 있으니까 내 아이를 돌보기나 해'
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이런 부모들은 돈이 넘쳐나는 건지, 낙관을 넘어 자포자기한 건지, 무슨 생각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들은 20대 중반, 심지어 20대 후반이 다 되어 가는 자기 자식을 돌봐달라며 센터로 데리고 온다. 너무나 나이가 많아 받을 수 없는 경우 거절하면, 부모들은 '상처받고 세상에서 도움 받을 곳 없는 불쌍한 내 아이'의 느낌을 풍기며 떠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우리는 어이가 없다.
심지어 지금 일하고 있는 20대 교사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을 받아달라는 부모도 있다!
성인이고 다 자란 자기 자식을 12살 때 학원 뺑뻉이 돌리듯 맡기려는 부모들의 사고방식에 기가 차곤한다. 부모는 잘못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때로는 따끔하게 충고하기도 하고, 세상으로 나가기 망설이기 두려워하는 아이에게는 용기를 북돋워주고, 실패하고 돌아온 청년에게는 위로와 함께 다시 나아갈 든든한 힘을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센터를 찾는 대다수의 부모는,
다 자라 이제 둥지를 떠나야 하는 새끼 새에게, '그래, 힘들면 더 있으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 새들은 다 자라서 둥지가 답답하고 좁아터지는 데도 날기를 포기하고 둥지에 앉아있다. 하늘을 훨훨 나는 다른 또래 새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세상에 안 나가서 그렇지, 내가 나가기만 하면 나는 쟤네들보다 훨씬 잘할걸~!'
이라며 정신승리만 하고 있다.
내 역할은 '응, 아니야. 너 지금 나가도 늦었어. 더 늦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나가야 할껄?'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제발 '두려워서 못 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나가야겠다'라고 생각이 바뀌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상에 나가서 뭐 엄청난 성공을 거두거나 꼭 남들처럼 살아라, 돈을 많이 벌어라, 이런 걸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산책이라도 하든, 아주 작은 2시간짜리 청소일이라도 스스로 돈을 벌어 용돈이라도 썼으면 하는 것이다. 부모는 나이가 들고, 자식은 30대가 되어간다. 그러나 방안에 들어앉은 아이들은 마치 신생아처럼 방안에 있다.
살아가다보면 상처받고,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상처로 인해 자기 자신의 미래까지 부수고 낭비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히키코모리다. 세상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에 대해 부모들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아이들은 중학생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그냥 집에만 있다. 나는 이것도 '방임이 아니라고 우기는 방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하려하지 않는다. 내 주변 멀쩡한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나같으면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서라도 아이를 끌고 나와서 아이랑 같이 산책이라도 하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그냥 놔둔다.
아이들이 골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이가 들고, 정신병이 깊어지도록 그냥 둔다.
부모의 학대로 차라리 길거리로 내쫓기는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발견'이 되니 치료와 도움, 지원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방안에 버려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아 더 찾기 힘들다.
이들은 정말로, 정말 말그대로, 조용히 방안에서 혼자 나이들어 죽는다.
나는 모든 히키코모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나와서 상처받고 방안으로 들어간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잠깐 쉬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자신을 치유하고 다시 마음의 힘을 얻게 되었을 때, 다시 세상으로 나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되기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나는, 아예 세상에 '나와본 적도 없는' 히키코모리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그러나 '나는 낫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은 문제다.
부모의 태도는 아이들에게도 세뇌된다.
'선생님, 저는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있을 거예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20대 아이들을 보면서 기가 차곤 한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 완벽해진 후 세상으로 나오겠다고 다짐하면, 죽는 날까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도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은,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부딪히며 자신을 정비한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아이와, 자기 자식을 부정하는 부모는, 세상으로 자기 자신을 던지지 않는다. 영원히 오지 않을 '완전히 정상인 상태'가 오기를 바라며 방에서 '낫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있다.
20대에게 완벽을 기대하는 어른들은 없다. 모두들 그들을 채용하고 교육하면서 이들이 부족하고 모자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지적도 하고, 꾸중도 한다. 그 지적과 꾸중은 '너는 못났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나아지기를 바란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 지적을 받고 아르바이트 1시간만에 도망가버린다거나, 지적받을까봐 시작도 안 하는 아이들이 있다.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나는 부족하다. 그러나 나는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인정하는 마음이 없는 아이들은, 방안에서 조용히 홀로 미쳐간다.
더 나아가, 세상으로 나갔다가 도망쳐도, 실패해도, 짤렸다고 해도, 다시 도전해야 한다. 삶은 원래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은 애초에 완전히 안전하고 편안하지 않다. 완벽하게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망상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한 안전과 안락을 보장하는 것은 없다. 그런 세상은 이 지구가 생겨난 이래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거다. 이 세상은 원래 위험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계속 도전을 하다보면, 일터에서 1시간 버티던 아이가 3시간을 버티고, 6시간을 버티고, 하루를 버티고, 일주일을 버티며, 그렇게 점차 사회인이 되어간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20대 사회초년생을 보내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나에게 온 21살 남자아이가 있었다.
'선생님, 저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럼 코인노래방을 가봐'
'저 돈이 없어요'
'그럼 아르바이트를 해봐'
'저는 정신병이 있어서 못해요'
'너 그건 초등학생 때잖아. 이제 다 나았잖아'
'어.... 그래도 무서워요. 전 못 해요.'
이런 패턴이다.
나는 이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딱 1시간만 버텨서 만원을 벌어보고,
그 돈으로 천원짜리 코인노래방에 가서 마음껏 노래를 하고,
먹고 싶던 맛있는 햄버거 세트도 자기가 번 돈으로 사먹어 보고,
보고 싶은 인천 앞바다를 지하철을 타고 가서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는 방안에서 행복하지 않다. 방안에 박혀 죽는 것은 그 아이의 꿈이 아니다.
그 아이가 두렵지만 용기를 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